증권업계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와 비종투사 간 실적 격차가 커지고 있다. 대형사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도 종투사 지정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투사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로 폭넓은 금융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2013년 10월 제도가 시작돼 현재까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등이 이름을 올렸다.
종투사로 지정된 대형 증권사의 시장 영향력은 우선 다양한 상품력에서 비롯된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날 기준 종투사 10곳의 ELS(주가연계증권) 등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은 총 67조1223억원으로 증권사 전체 규모인 83조2811억원의 80.6%를 차지한다. 2013년 3월 이들 10곳의 파생결합증권 비중이 58.2%(39조9642억원)였던 것을 고려하면 12년 새 20%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치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신용공여도 비슷하다. 금융투자협회에 확인한 결과, 전날 기준 종투사 10곳이 보유한 부동산 PF 신용공여 물량은 13조3926억원으로 증권사 전체 물량의 75.3%에 달했다. 2013년 53.7% 정도 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불었다.
대형사들의 ELS 발행과 PF 신용공여 규모가 늘어난 것은 종투사 진출 영향이 크다. 종투사의 경우, 대출 등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100%에서 200%로 늘어나고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기존보다 많이 발행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종투사로 지정받기 위해 증권사들의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10월 당시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 5곳이었던 종투사는 2017년 신한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 2019년 하나증권, 2022년 키움증권, 2024년 대신증권 등이 각각 진출했다.
효과는 컸다. 2013년 2302억원이었던 이들 대형사 10곳의 합계 영업이익은 작년 말 7조9325억원으로 30배 넘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증권업계 전체 순이익 증가 폭이 21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들 대형사가 증가세를 주도한 셈이다. 자기자본도 이들 10곳은 2013년 말 23조8217억원으로 전체 58.4%에 그쳤으나 작년 말에는 66조170억원으로 70% 이상을 차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다른 중소형사도 종투사 진출에 목을 맨다.
자기자본 기준 업계 11위인 교보증권은 2029년 자기자본 3조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작년 말 1조9876억원으로 목표까지 약 1조원 남았다. 자산관리(WM) 본부와 IPS(Investment Product Service) 본부를 함께 관리·운영하는 WM부문을 신설하고 구조화금융본부와 투자금융본부를 구조화투자금융본부로 통합하는 등 IB 부문을 재편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증권도 종투사 진입에 시동을 걸었다. 작년 11월 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기자본을 늘렸다. 현재 자기자본이 1조2944억원으로 종투사 요건까지 많이 남았으나 신사업추진단 신설 등 IB·리테일 부문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중소 증권사 관계자는 “종투사 도입 후 증권업계 양극화가 심화했는데 종투사가 되면 신용공여 확대 등 여러 가지 사업에 나설 수 있어 수익성 확대 측면에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중소형사들이 실적 개선을 위해 종투사에 무리하게 진출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지닌 전문성이나 비즈니스 등 특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성장 둔화 등으로 대형사 내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자본이 부족해도 대형사와 견줄 수 있으려면 증권사 자체 전문성이나 특화된 비즈니스 전략을 활용해 틈새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수익을 내야 한다”며 “AI를 활용해 자산관리 부문에서 모델을 만들고 IB 부문 M&A 자문도 중소형사들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문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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