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가 눈총을 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 발표로 주주가치가 희석돼 주주들에게 직·간적접 손실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 뉴스1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 뉴스1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에 대해 선제적 투자 자금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서는 경영권 승계 목적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양호한 현금흐름으로 자체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만 기습적으로 유상증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시행 가능성을 염두한 유상증자 결정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는 상법 개정 이후 유상증자했다면 배임 혐의로 고소당할 만한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손재일 대표 해명에도 시장 반응 냉담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대규모 유상증자와 관련해 “유상증자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차입을 통한 투자 계획을 고민했지만 이는 회사 부채비율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문제가 있었다”며 “단기간 내 부채 비율 급등으로 재무 구조가 악화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규모 투자를 단기간 내에 집행할 계획을 세우다 보니 자금 마련 계획에 애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신속한 투자 단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입장이지만 시장의 반응을 냉담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다음날인 3월 21일 종가 기준 62만8000원으로 전일 대비 13.02% 급락했다. 3월 22일에는 67만4000원에 마감돼 오름세를 보였지만 이날 종가는 손 대표의 해명에도 65만1000원으로 전일 대비 3.41% 하락했다.

시점·이유 모두 의문인 역대 최대 규모 유상증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월 20일 이사회를 열고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는 국내 주식 시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이를 통해 오는 2028년까지 해외 방산에 1조6000억원,  국내 방산에 9000억원, 해외 조선에 8000억원, 무인기용 엔진에 3000억원 등을 투자한다.

시장에서는 투자 재원 마련에 유상증자를 택한 이유와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금흐름이 양호해 자체 자금 등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4년 매출액은 11조4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91% 급증한 1조7319억원이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조9677억원이다. 방산 수주잔고는 전년 대비 16.3% 증가한 32조4000억원이다. 향후 3년간 예상 영업이익은 6조5000억원 수준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차입 대신 유상증자 결정에 대해 재무건전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단기 차입금 증가는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유상증자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경영권 승계 포석 시각 지배적

하지만 시장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1조원 이상의 자금을 들이고 부족한 투자 재원 마련을 일반 주주들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월 10일 이사회를 열고 한화임팩트파트너스(5.0%), 한화에너지(2.3%)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 7.3%를 1조3000억원에 매입하기로 의결했다. 해당 거래는 3월 13일 이뤄졌다.

앞서 한화그룹 계열사 4곳이 2023년 5월 2조원 규모의 대우조선해양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해양 지분 49.3% 확보하면서 계열사별로 나뉜 지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모았다.

이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율은 34.7%에서 42.0%로 늘었다. 김동관 부회장의 방산 부문 지배력이 강화된 셈이다.

또 이 거래로 한화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한화임팩트파트너스와 한화에너지는 1조3000억원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50%)과 차남 김동원 부사장(25%), 삼남 김동선 부사장(25%)은 한화에너지 지분 100%를 보유했다. 한화임팩트의 대주주는 한화에너지(52.1%)다. 한화그룹 승계의 중심인 두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매수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할 수 있게 됐다.

“유상증자 3분의 1은 총수 승계 위한 것”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3조원대 유상증자가 회사 사업을 위한 투자 결정인지 사업을 핑계로 총수일가 승계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승계를 위한 차원이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건 맞지만 갖고 있던 현금을 계열사 주식 사려고 줬다는 게 문제다”며 “유상증자의 3분의 1가량은 총수 승계를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상법 개정 전 주주의 배임 소송 등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국회가 회사로 한정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고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등 상법 개정안 시행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할 경우 오는 2026년 상반기 중 시행될 전망이다.

박상인 교수는 “주주가치를 위해선 이렇게(유상증자) 안 한다”며 “상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상법 개정 전에 사고를 쳤다. 상법 개정됐으면 이사들 배임 등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