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주요 대기업 그룹 중 유일하게 상장사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공시를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해 배당을 실행한 그룹 산하 상장법인은 4곳에 그쳤고 자사주 소각에 나선 곳은 전무했다.

방산 수혜주로 한창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가마저 급락하는 등, 주주환원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이후 터져 나온 김승연 회장 아들들의 승계 소식과 겹쳐, 증여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가치 제고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그룹 소속 상장사 12곳 어느 곳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을 내지 않았다. 공정자산총액 100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6곳(삼성·SK·현대차·LG·포스코·롯데)이 32건의 밸류업 공시를 낸 것으로 상반된다.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전경. / 조선DB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그룹 소속 상장사 12곳 어느 곳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을 내지 않았다. 공정자산총액 100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6곳(삼성·SK·현대차·LG·포스코·롯데)이 32건의 밸류업 공시를 낸 것으로 상반된다.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전경. / 조선DB

8일 IT조선이 한국거래소 밸류업 공시를 집계한 결과, 작년 5월 말부터 전날까지 밸류업 공시(예고 포함)를 발표한 상장법인은 총 132개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한화그룹 소속 상장사는 한 곳도 없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한화그룹 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 한화, 한화비전, 한화생명, 한화엔진, 한화리츠, 한화투자증권, 한화손해보험, 한화갤러리아 12곳이다.

이는 밸류업에 시동을 건 다른 그룹과 상반된 행보다. 지난해 공정 자산총액 100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7곳(삼성·SK·현대차·LG·포스코·롯데·한화)이 이날까지 내놓은 밸류업 공시는 총 32건이었다. 이들 상장사 수가 전체 91개인 걸 고려하면 3분의 1 이상이 주주환원 계획을 내건 셈이다. 

그룹별로 보면 ▲롯데그룹이 상장사 11곳 중 8곳 ▲LG그룹이 12곳 중 7곳이 ▲SK그룹 21곳 중 7곳 ▲현대차그룹 12곳 중 6곳 ▲포스코그룹 6곳 중 3곳이 ▲삼성그룹 17곳 중 1곳이 밸류업 공시를 각각 내놨다.

공정자산총액 50조원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GS그룹을 제외하고 HD현대그룹에서 8곳, 농협그룹 1곳, 신세계그룹 3곳이 밸류업 공시를 발표한 상황이다.

공정자산 100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밸류업 공시 기업 현황. / [그래픽=윤승준 기자] 
공정자산 100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밸류업 공시 기업 현황. / [그래픽=윤승준 기자] 

한화그룹이 주가 상승에 호재인 밸류업 공시에 주저하는 것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상속세나 증여세는 평가 시점 주식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되는데 주가가 낮을수록 대주주에게 유리하다. 하락한 만큼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지배구조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나머지 한화 계열사’로 구성됐다가 최근 김 회장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3형제에게 한화 지분 11.32%를 증여하면서 ‘김 부회장-한화에너지-한화-나머지 한화 계열사’로 바뀌었다.

증여세 과세 기준은 4월 30일을 기준 삼아 전후 2개월 주가 평균으로 결정된다. 7일 한화 주가는 3만9400원으로 과세 기준 밖인 2월 27일(4만2250원)보다 6.7% 하락했다. 6월 말까지 주가가 더 하락하면 증여세는 줄어들 수 있다.

김규식 변호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에너지의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해 그룹 3형제에게 자본을 만들어주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갑자기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다 계획돼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한화 주가를 누르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한 것 같고 밸류업 공시를 내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 증여 후 한화그룹 지배구조. / [그래픽=윤승준 기자]
김승연 회장 증여 후 한화그룹 지배구조. / [그래픽=윤승준 기자]

 

배당 절반 이상 미실시

한화그룹은 배당에도 소극적이었다. 한화그룹 소속 12월 결산법인 11곳(한화리츠 제외) 중 올해 배당을 발표한 곳은 ▲한화 ▲한화솔루션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4곳에 그쳤다. 나머지 7곳은 주주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는다.

배당금 규모도 적었다. 한화그룹 11곳은 지난해 모두 합쳐 순이익 2조2301억원(별도 기준)을 거뒀음에도 배당금으로는 3484억원 내놓았다. 비율로 환산하면 15.6%다. 2023년 코스피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 34.3%를 크게 밑돈다.

주주환원 정책인 자사주 취득·처분에도 머뭇했다. 자사주 소각은 한화그룹 어디도 실시하지 않았고 자사주 매입의 경우 한화손해보험이 작년 4~7월 100만주(42억원) 취득한 게 전부였다. 

대신 주가에 부정적인 유상증자가 2건 있었다. 지난달 2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해 주가에 악재로 꼽힌다. 작년 11월에는 한화리츠가 시총의 1.6배인 3837억원 유상증자에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 조선DB
사진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 조선DB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발표 한 달 전인 2월 10일 한화임팩트(5.0%)와 한화에너지(2.3%)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약 1조3000억원)를 매입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두 기업에 현금을 챙겨준 뒤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해서다. 한화에너지는 김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그룹 3형제가 100% 보유한 ‘가족회사’다. 한화임팩트의 최대주주는 한화에너지(지분 52.07%)다. 

피해는 온전히 주주들 몫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상증자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달 19일 대비 7일 기준 한화그룹 12곳의 주가 등락률은 –15.5%로 코스피 하락률(-11.4%)을 5%포인트 웃돌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 한화시스템이 -28.6%로 하락 폭이 가장 컸다.

한화 측은 밸류업 공시는 검토 중이고 이는 경영권 승계와 전혀 무관하단 입장이다.

한화 관계자는 “밸류업 공시와 관련해 여러 가지 감안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주가를 누르려는 의도에 대해서는 “개별기업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한화의 주가는 자회사들의 성과 등으로 지속 상승해왔고 증여세를 계산하는 구간에는 10년 내 최고 주가를 포함하고 있어 낮은 주가에 증여한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답변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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