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국내 지불결제시장을 마치 소 닭 보듯 여기는 것 같습니다"
최근 주요 카드사의 애플페이 도입설에 한 카드업계 종사자가 내뱉은 말이다. 그는 애플의 한국시장 경시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곳 중 하나로 페이먼트 업계를 지목했다.
이같은 지적에는 애플의 양면적인 행동이 자리한다. 실제 애플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이미 컨택리스 결제 인프라가 보편화돼 있는 국가에서는 최적화된 기능을 제공, 시장 확산을 주도했다. 특히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일본 공통규격인 FeliCa(소니가 개발한 비접촉 IC카드 기술 방식) 기술을 아이폰에 통합하며 일본 소비자 마음잡기에 주력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애플페이 전용 결제 단말기 보급조차 온전히 카드사에 떠넘기면서 배짱장사에 나섰다. 수수료도 중국이나 유럽 등 주요국에 비해 최대 5배나 높지만, 단 한번도 깎아줄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업계 비판이 새삼 와닿는다는 부분이다.
인프라 현실도 녹록지 않다. 애플페이는 국제 결제 표준인 EMV 방식 중 비접촉 결제를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국내 가맹점은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하다. 애플이 단말기 확산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카드사가 이를 대신한 결과다. 그러다보니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은 손에 꼽힌다.
최근 현대카드에 이어,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카드업계 분위기는 심드렁하다.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판타지로 인해 사용자 관심은 높지만 막상 실익은 미미한 '계륵'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실제 카드업계는 애플페이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그리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금융감독원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신한·KB국민·현대카드 3사가 애플페이를 제공할 경우 예상 연간 결제금액은 7조~8조원 정도 된다. 이는 지난해 전체 개인·법인카드 결제금액 856조원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현대카드 역시 애플페이 독점 운영 이후 이렇다할 수익성 개선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페이를 통해 이뤄진 현대카드 결제승인금액은 총 2조97억원이다. 현대카드 전체 카드 결제승인금액(185조5664억원)의 1.1%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현대카드가 애플페이로 벌어들인 수수료는 340억원으로 전체 매출에 1%에도 못미쳤다.
삼성페이와의 형평성 문제도 변수다. 카드사들이 앞다퉈 애플페이를 도입한다고 하면 삼성전자 역시 기존의 '결제 수수료 무료'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수수료 부담은 고스란히 카드사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소비자 혜택 감소로 이어진다. 애플페이의 국내 상륙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이쯤되면 국내 시장 여건을 도외시한채 애플이라면 혁신이라 추종하는 세태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일방적 계약 구조를 강요하는 영업방식도 감수하겠다는 국내 업체들이 있는 한, 애플이 국내 시장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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