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오너 자녀들이 최근 급락장에서 자사 주식 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주가가 하락한 지금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거나 본격화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해석한다. 취약한 대주주 지분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원국회 신영증권 명예회장의 장남인 원종석 신영증권 회장은 신영증권 주식 3만1403주를,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장남인 양승주 군은 대신증권 9만4684주를,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의 장남인 윤승현 상무는 10만627주를 각각 매입했다. 대신증권, 신영증권, 유화증권 본사 건물. / 조선DB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원국회 신영증권 명예회장의 장남인 원종석 신영증권 회장은 신영증권 주식 3만1403주를,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장남인 양승주 군은 대신증권 9만4684주를,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의 장남인 윤승현 상무는 10만627주를 각각 매입했다. 대신증권, 신영증권, 유화증권 본사 건물. / 조선DB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원종석 신영증권 회장은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1일까지 16차례에 걸쳐 회사 주식 3만1403주를 매입했다. 매입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규모는 24억4000만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28일엔 상여금으로 자사주 4360주도 받았다. 원 회장 지분은 작년 말 7.98%에서 현재 8.19%로 0.2%포인트 늘어났다. 

대형사도 예외는 아니다. 10대 증권사 중 한 곳인 대신증권 가족들도 급락장에 지분을 늘렸다.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의 장남인 양승주군(2011년생)은 이달 1일부터 25일까지 14차례에 걸쳐 대신증권 보통주 9만4684주를 사들였다. 매입일 종가 기준 16억원 규모다. 양군 지분율은 0.35%에서 0.53%로 올라갔다. 이어룡 회장의 장녀인 양정연씨도 이달 4차례에 걸쳐 2만9000주를 매입했다. 

‘은둔의 증권사’로 불리는 유화증권도 자녀의 주식 매입에 열심이다. 윤경립 유화증권 회장의 장남인 윤승현 상무는 1월에 한 번, 3월에 세 번 주식을 매입했다. 그 규모는 10만627주로 2억3000만원(매입일 기준)이다. 윤 상무의 지분은 6.56%로 작년 말 대비 0.3%포인트 이상 늘었다. 윤 회장의 자녀인 윤혜선씨도 3월부터 26차례 13만4340주를 사들였다.

올해 지분 확대한 증권사 오너일가 자녀 목록. / [그래픽=윤승준 기자]
올해 지분 확대한 증권사 오너일가 자녀 목록. / [그래픽=윤승준 기자]

오너 일가의 주식 매입은 주가로만 보면 호재다. 회사 내부사정에 밝아 저평가 상태일 때 주식을 매수한다고 인식돼서다. 이번에도 효과는 있었다. 1일 7만3800원이었던 신영증권 주가는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서’ 공시 후 지속 상승했고 24일 현재 주가는 7만9300원에 이르렀다. 이 기간 7.5% 상승했다.

대신증권도 지난달 말 1만6220원에서 24일 현재 1만7390원으로 7.2% 올랐다. 유화증권의 올해 상승 폭도 7.3%로 코스피 등락률 5.1%를 웃돌았다.

대신·신영證 대주주 지분 20% 내외로 취약

이들의 주식 매입 속내는 승계 작업을 위한 발판으로 풀이된다. 신영증권은 최대주주인 원국희 명예회장이 90세(1933년생)를 넘겼음에도 아직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지 못했다. 원 명예회장의 지분은 10.42%로 원 회장보다 2%포인트 이상 높다. 지분 확대가 절실하다. 지금 당장 상속 또는 증여할 경우 ‘최대주주 할증평가’에 적용돼 원 회장이 낼 상속·증여세 부담이 적지 않다. 

대주주 경영권 지분이 취약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대신증권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합계 지분율은 17.67%다. 통상 대주주 지분율이 30%를 넘어야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저히 낮다. 신영증권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합계 지분율도 20.64%에 불과하다. 모두 최근까지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다올투자증권의 대주주 지분율 24.98%보다 4~7%포인트 밑돈다.

물론 대신증권과 신영증권은 자사주 비중이 발행 주식 수(보통주)의 각각 25.2%, 53.1%로 커 당장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지는 않겠으나 금융당국이 줄곧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방안 중 하나로 자사주 소각을 강조하고 있고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도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공약으로 추진하면서 자사주만 믿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녀의 직접 매입은 단순한 오너일가 지분 확장이 아닌 후계 승계를 명확히 하려는 신호로 볼 수 있고 향후 경영권 다툼이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도 읽힌다”며 “최근 상속·증여세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주식 직접 매입을 통한 승계 전략은 법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확실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너일가 지분 매입은 단순히 내부 경영권 이슈를 넘어서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 메시지로도 작용한다”며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간접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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