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장관 등 정부 요직에 기업인 출신을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의 관료·학자 중심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산업에 정통한 민간 실무형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워 정책 추진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은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에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 등 11개 부처 12명을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 등으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AI 3대 강국 달성을 위해 모신 전문가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게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소개했다.
강 비서실장은 한성숙 후보자와 관련해선 "한 후보자는 라인, 네이버 웹툰 등으로 혁신을 이끌었고 포천지의 인터내셔널 파워우먼 50에 4년 연속 선정된 인물"이라며 "관련 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소벤처기업 육성 전략에 새로움을 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인 출신 인사를 정부 요직에 기용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번처럼 두 명을 동시에 발탁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 장관으로는 최양희 서울대 교수, 중소기업청장으로는 한정화 한양대 교수가 임명돼 모두 학계 출신이 중용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대 과기정통부 장관에 LG CNS 부사장 출신 유영민을 기용했다. 이후 학계인 최기영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를 후임으로 앉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박영선, 권칠승 등 국회의원 출신이 맡았다.
윤석열 정부는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이종호 서울대 교수를, 이후 2024년에는 유상임 성균관대 교수를 후임에 임명해 학계 중심 기조를 유지했다. 중기부는 벤처기업협회장 출신 이영 장관, 이후에는 외교관 출신 오영주 베트남 대사가 잇따라 장관직을 맡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기업인 중심 인사는 민간 주도 혁신 생태계 조성과 함께 AI, 디지털 전환 등 기술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론이나 법규에 얽매이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성과를 창출해 본 경험이 있는 인물을 통해 정책의 실행력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는 광운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국내 AI 기술 전략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SK텔레콤 미래기술원과 LG전자 AI추진단장 등을 거쳐 2020년 LG AI연구원 초대 원장에 올랐고, 그룹의 중장기 AI 전략과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위원, 초거대AI추진협의회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인공지능학회 부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AI 정책 수립과 산업 생태계 조성에 관여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국정 과제로 제시한 ‘AI 3대 강국 실현’을 이끌 실무형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는 네이버의 전환기를 이끈 여성 리더로 꼽힌다. 기자 출신으로 엠파스와 네이버를 거쳐 2017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그는 검색·광고 중심의 사업 구조를 커머스, 콘텐츠 등 신사업 중심으로 확장했다. 실제 대표 취임 전 4조원대였던 네이버의 연 매출은 2020년 6조 5000억원으로 60% 이상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한 후보자가 중기부 장관으로 발탁된 배경에는 소상공인과의 상생에 주력했던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표로 재임 시절, 소규모 사업자와 창작자들을 위한 상생 모델 '프로젝트 꽃'을 주도해 왔다.
채상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성과 중심, 실무 중심의 인사를 우선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 이론보다는 산업 현장 경험과 최신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인사를 통해 협력의 실질적 강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며 “산·학·관의 협업 역시 이전 정부보다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간 투자도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상미 교수는 “그동안 과기·중기 분야에 학계나 관료 출신이 주로 등용됐던 반면, 이번에는 산업계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R&D 투자에 있어 민간의 참여가 더욱 원활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러면서도 정책 설계에 있어서는 “산업계 출신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만큼, 형평성과 공공성 확보에도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사례처럼 개혁이 이해관계 충돌을 부를 수 있는 만큼, 사회적 수용성과 공정한 정책의 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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