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이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종합광고 기업인 ADK그룹을 품에 안았다. 게임을 넘어 미디어와 콘텐츠로 IP 확장을 본격화하는 동시에 광고 사업과의 시너지도 노린 행보다.
다만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의 콘텐츠 기업 투자 성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크래프톤이 이번 인수를 통해 차별화 한 성공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크래프톤은 24일 공시를 통해 일본 ADK그룹을 약 71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1956년 설립된 ADK는 일본 3대 종합광고사 중 하나로 글로벌 인지도를 지닌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해 온 콘텐츠 기업이다. 2024년 기준 연매출은 약 3480억엔(약 3조2600억원)에 달한다.
크래프톤은 이번 인수로 ▲게임 IP 기반 애니메이션 제작 ▲일본 현지 광고·미디어 인프라 활용 ▲광고 플랫폼 역량 강화라는 세 가지 전략을 이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창한 대표는 "ADK와의 협업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간 다양한 접점을 발굴할 것"이라 밝혔고, 회사 측도 양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ADK의 70년 축적해 온 일본 내 광고·미디어 인프라에 크래프톤의 게임 역량을 연계해 일본 콘텐츠 산업 전반으로의 확장 기회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오야마 토시야 ADK홀딩스 그룹 CEO는 “크래프톤은 게임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IP 기업”이라며 “양사의 강점과 축적된 노하우를 결합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일본 시장은 물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창의적인 도전과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실패 잦았던 과거 콘텐츠 투자 사례
ADK 인수는 국내 게임사 콘텐츠 투자 역사상 최대 규모다. 과거 최대였던 넥슨의 영화제작사 AGBO 투자(2022년, 약 6000억원)를 뛰어넘는다. 넥슨의 사례처럼 국내 게임사들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전환과 IP 다각화를 위해 콘텐츠 제작사와의 접점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러나 투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넥슨의 지주사인 NXC는 당시 ‘어벤져스’의 루소 형제가 이끄는 할리우드 제작사에 두 차례 걸쳐 총 5억달러를 투자했지만, 퍼스트 버서커: 카잔의 트레일러 영상 제작에 AGBO가 참여했다는 것 이외에 게임과의 시너지 성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던전앤파이터 IP 기반 영상화 역시 2022년 이후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규모 투자는 ‘수익성 악화’ 리스크로 돌아오기도 했다. 실제 넥슨은 2023년 4분기 실적에서 AGBO 스튜디오 투자지분 손상차손 444억엔(약 3950억원)이 반영된 여파로 당기순이익이 2022년 9999억원에서 2023년 7062억원으로 급감했다.
컴투스 역시 게임 IP 영상화·콘텐츠 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위지웍스튜디오를 2021년 인수했지만, 시장의 콘텐츠 제작 수요 감소로 인해 2022년, 2023년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에도 콘텐츠 부문의 무형자산 손상차손이 반영되면서 당기순손실이 1520억원에 달했다.
이 외 엔씨소프트의 웹툰·웹소설 플랫폼 투자, 넷마블 자회사 넷마블에프앤씨의 드라마·영화 제작사 ‘에이스팩토리’ 인수 사례로도 이어졌지만, 대부분 수익성과 긍정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번엔 다르다”… 크래프톤이 거는 승부수
크래프톤은 이번 인수를 단순한 IP 외연 확장이 아닌, 게임·애니메이션·광고가 연결된 통합 생태계 구축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최근 애드테크 기업 넵튠을 인수한 데 이어 ADK까지 품에 안으며, 콘텐츠 유통과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내부화하려는 전략이다. 글로벌 활로를 넓히기 위해선 이런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본 것이다.
크래프톤은 콘텐츠 측면에서 이미 ‘펍지 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세계관 기반 확장 실험을 진행해왔다. 2021년 넷플릭스 ‘캐슬바니아’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아디 샨카를 애니메이션 총괄 프로듀서로 영입했고, 2023년에는 단편 실사 영화 ‘그라운드 제로’도 선보였다.
이는 배틀그라운드 IP를 단순 게임에 머무르게 하지 않겠다는 장병규 의장의 전략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2021년 IPO 간담회에서 “게임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변주하는 것이 크래프톤의 숙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넷플릭스 ‘아케인’(리그 오브 레전드), ‘엣지러너’(사이버펑크 2077), HBO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등 게임 IP 기반 영상 콘텐츠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게임 IP의 확장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은 숏폼 플랫폼 투자를 비롯해 IP 활용처를 넓히기 위한 작업을 이어왔다”며 “이런 지속적인 노력은 크래프톤이 게임을 넘어 애니메이션과 광고를 아우르는 통합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 궁극적으로 글로벌 IP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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