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규제로 이자이익 감소가 불가피해지자 수익 다변화를 위한 새로운 활로 찾기에 나섰다. 수수료 수익 비중이 큰 신탁사업 확대는 물론, 이종 산업과의 제휴, 글로벌 영업망 확장 등을 통해 비이자이익을 키우려는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신사업 확대 움직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은행들은 금융당국에 하반기 가계대출 공급 목표치를 상반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제출했다. 5대 은행이 당초 설정한 규모는 7조2000억원 수준이었지만, ‘6.27 규제’ 발표 이후 대폭 하향 조정됐다.
기업대출 확대도 여의치 않다.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대출은 자산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어 무작정 늘리기 어렵다. 특히 기업대출은 위험가중자산(RWA)을 증가시켜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자이익 축소가 예상되자 시중은행들은 수수료 기반 수익 중심의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부문은 신탁사업이다. 고객 자산을 대신 운용하고 이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구조인 신탁은, 금리 하락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꼽힌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신탁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6% 증가한 24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홍콩 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사태 여파로 일시적인 위축을 겪었지만, 올해 들어 상품 다변화와 고객층 확대에 힘입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금 실물 신탁을 선보였고, 국민은행은 유언대용신탁의 가입 기준을 기존 10억원에서 1000만원으로 대폭 낮춰 진입 장벽을 완화했다. 농협은행은 부동산증여신탁과 종합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자산 이전과 승계 수요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비이자 수익 확대 전략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영업망 확장도 주요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은행은 다음 달 미국 LA지점을 열고, 서부지역 리테일 시장과 중소기업 금융을 본격 공략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의 미국 법인 Hana Bank USA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리테일 영업을 중심으로 해왔으며, 이번 LA 진출로 활동 반경을 서부로까지 넓히게 된다.
신한은행은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거점인 런던지점을 최근 8 비숍스게이트 빌딩으로 이전하며,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금융공사와의 업무협약도 체결해 인프라 금융 및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기반을 마련했다.
이종 산업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우리은행은 KB국민은행에 이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며 청년층을 겨냥한 요금제를 출시했고 신한은행은 제조업체의 공급망에 맞춤형 금융을 제공하는 서비스형 뱅킹(BaaS)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임베디드 금융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임베디드 금융은 비금융 기업의 플랫폼이나 서비스에 금융 기능을 자연스럽게 통합해, 사용자가 별도 은행 방문 없이 결제 등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민은행은 삼성금융네트웍스, 스타벅스, 빗썸 등과 제휴해 관련 서비스를 선보였고, 하나은행은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과 협력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도 각각 CJ올리브네트웍스, 네이버페이 등과 손잡았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자이익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비이자 이익 확대 전략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며 “단순한 신사업 진출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닦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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