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유튜버와 유사언론 등 허위정보 생산자를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업계에서는 허위정보의 정의가 모호하면 검열과 정치적 악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주요국도 허위정보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규제와 자율규제를 병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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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3일 공개한 6월 19일자 국무회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김석우 법무부 차관에게 “가짜뉴스로 돈 버는 유튜버가 많다”며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지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노선균 법무부 대변인은 “대통령 지시사항에 따라 내부적으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향후 관련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허위정보 유포자에게 실제 손해액의 3배에서 5배에 달하는 배상 책임을 지우는 제도다. 형벌적 성격을 띠는 만큼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정부는 현행 형사처벌만으로는 허위정보 확산을 막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법적 제재 수단이 흩어져 있고, 유튜브 등에서 얻는 수익에 비해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가짜뉴스 대응, 각국 규제 강화… 한국도 정권별 조치 이어져

이 대통령의 지시는 가짜뉴스로 발생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5%는 가짜뉴스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매우 심각 55.9%, 심각 38.5%)하다고 답했다. 특히 딥페이크를 활용한 이미지·영상 조작 가짜뉴스의 부정적 영향이 더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4.9%에 달했다.

해외 주요국이 허위 정보 규제를 강화한 이유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만 각 국가별로 가짜 뉴스를 다루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가짜뉴스를 직접 처벌하는 법은 없다. 명예훼손법, 전기통신법 등 개별 법률에 따른 사후적 소송이 일반적이다. 페이스북, X(구 트위터) 등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유럽연합(EU)은 ‘허위 조작 정보’라는 표현을 쓰며 법적 조치와 자율규제를 병행한다.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유해 콘텐츠의 신속 삭제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독일은 위법 콘텐츠가 신고되면 24시간 내 삭제를 의무화한 네트워크 집행법(NetzDG)을 시행 중이다. 위반 시 최대 5000만유로(약 801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 정부 또한 역대 정권을 거치며 가짜뉴스 차단 대책을 이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이 직접 SNS 유언비어 단속을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초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 논의가 촉발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2023년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 근절 TF’를 발족했고, 포털·플랫폼 사업자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신속 대응을 위한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허위 정보’ 정의 모호… 법조 전문가 “과도한 검열·정치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우려가 크다. 가장 큰 쟁점은 '허위정보'의 정의와 범위다.

김태림 법무법인 바를정 변호사는 “허위정보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고, 정치적 견해나 비판적 발언까지 포함되면 자의적 해석과 남용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준이 모호하면 단순 실수나 의혹 제기까지 제재 대상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 원칙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이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 유튜버 등 1인 미디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판례는 드물다. EU도 개인 콘텐츠 제작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사례는 거의 없다.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교수(전 방통위 상임위원)는 “플랫폼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정권이 바뀌고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검열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와 법적 기준 정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AI 기술 발달로 허위정보가 고도화되는 만큼 정치권이 책임감을 갖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선우 기자
swch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