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증시 호황을 맞아 체급을 한층 키웠다. 10대 증권사들이 상반기에 거둔 순이익은 또다시 4조원을 넘겼다. ‘투자실력’을 의미한 운용손익에서 높은 수익을 올린 결과다.
금리 인하에 따른 채권 평가 확대, 환율 안정 등이 운용손익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하반기 기대도 크다. 종합투자계좌(IMA), 발행어음 인가에 따라 호실적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실적을 발표한 상반기 자기자본 상위 10개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NH·삼성·메리츠·KB·하나·신한·키움·대신)의 연결 순이익은 총 4조4858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3조6837억원 대비 21.8% 증가한 규모다. 역대 최대치인 2021년 4조7222억원엔 살짝 못미쳤으나 2022년 2조8777억원, 2023년 3조189억원에 이어 4개년도 연속 순이익 증가세를 이어갔다.
회사별로 보면 한국투자증권 1조252억원, 미래에셋증권 6641억원, 키움증권 5457억원, 삼성증권 4831억원, NH투자증권 4651억원, 메리츠증권 4434억원 등의 순으로 순이익이 컸다. 증감률(전년동기 대비)로는 미래에셋증권 80.3%, 대신증권 44.6%, 한국투자증권 44.2%, 신한투자증권 25.1%, 메리츠증권 19.9%, 키움증권 14.4%, NH투자증권 10% 등의 순이었다.
호실적은 운용손익(트레이딩) 부문의 선전 덕분이다. 상반기 실적 자료에서 부문별 순영업수익을 공개한 증권사 7곳(한국투자·미래에셋·NH·삼성·메리츠·키움·대신)의 운용손익은 총 3조4003억원으로 전년동기 2조6491억원 대비 28.4% 늘어났다. 같은 기간 브로커리지 순영업수익이 1조7712억원으로 12.1%, IB가 1조2873억원으로 13.3% 늘어난 것과 비교해 컸다.
운용손익은 증권사가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을 직접 매매·운용해 거둔 이익을 뜻한다. 연초 이후 금리 인하에 따른 채권 평가이익 확대, 환율 하락(원화 강세)으로 발생한 외화채 이익, 증시 호황으로 인한 주식 가치 상승 등이 운용손익 실적을 개선한 것으로 분석된다.
운용손익이 결국 실적을 좌우했다. 1위 한국투자증권은 상반기 운용손익으로 7367억원을 벌었는데 이는 작년 상반기 3899억원 대비 89.1% 늘어난 규모였다. 순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6.6%로 절반에 육박했다.
2위 미래에셋증권도 운용손익에서 전년동기 5901억원 대비 35.9% 늘어난 801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비교적 저조한 순이익을 거둔 NH투자증권은 같은 기간 운용손익이 5.7% 감소했고 역성장한 삼성증권은 운용손익이 8.9%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발행어음과 채권이 운용손익 확대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만기 1년 이내 단기금융상품) 잔고는 2분기 기준 17조97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2% 늘어났다. SK증권은 한국투자증권이 2분기에 채권으로 1800억원, 발행어음으로 650억원, 외화채로 600억원의 운용손익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발행어음 비즈니스를 제일 크게 하는 증권사이고 발행어음 구조상 채권 위주로 편입하는데 금리 하락에 따른 수혜를 많이 봤다”며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화채 이익 발생, 카카오뱅크 등으로부터 고정적으로 받는 배당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외화채를 중심으로 채권을 늘리며 운용손익을 키웠다. 채권 잔고는 37조원으로 1년 전보다 4조1000억원 늘었는데 외화채 증가분이 1조3000억원으로 3분의 1 차지했다.
운용손익을 중심으로 한 호실적은 하반기에도 지속할 전망이다. 주요 증권사들이 IMA와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 3곳은 IMA를, 삼성증권·메리츠증권·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키움증권 5곳은 발행어음을 신청한 상태다.
인가를 받을 경우 IMA는 자기자본의 300%까지, 발행어음은 200%까지 자금 조달이 가능해 운용자산 확대에 따른 손익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일정이 8월·10월·11월 세 차례 남은 만큼 기준금리 인하 시 채권평가이익이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고연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IMA과 발행어음은 고객 예탁금을 활용해서 운용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IMA와 발행어음 사업을 하게 되면 수신기반이 확대돼 추가적인 운용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금리 하락 등으로 하반기에도 채권 평가이익이 증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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