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계기로 미국과 조선업 협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조선업계가 미국 이외 해외 거점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조선업 부흥 정책을 추진하는 해외 신흥시장에서 수주 물량을 생산하고 현지 유지·보수(MRO) 효율성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최근 브라질에 신규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조선소 투자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화오션은 해당 지역에서 제작할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수주에 나설 방침이다.
한화오션의 이번 계획은 현지 프로젝트 참여로 현지 생산 요건을 맞추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화오션은 현재 브라질 국영 원유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P-86 FPSO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현지 생산 참여 요건으로 최소 20% 이상의 브라질 현지 생산 및 통합·시운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현지 부품 사용 의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화오션은 이번 프로젝트 수주 시 브라질의 조선업 재건 추진에 힘입어 현지 사업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5월 현지 조선소의 수리, 개조, 확장, 현대화와 신규 항만 인프라 건설 등 26개 프로젝트에 220억 헤알(약 5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페트로브라스 역시 오는 2035년까지 25척의 선박을 건조할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브라질 법인과 함께 인도에도 신규 법인을 설립했다. 인도에 설립된 법인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센터로 FLNG, FPSO 등 해양플랜트 상부 구조물의 일부 상세 설계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 역시 오는 2023년 조선 분야 세계 10위를 목표로 조선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에는 4조원 규모의 해양산업발전기금을 신설했다. 조선금융지원정책을 도입해 인도 현지 조선사들의 건조 선박에 대해 20~30%의 장기 고정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하고 있다.
HD현대 역시 인도 시장 확장을 추진하며 해외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HD현대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인 코친조선소와 ‘조선 분야 장기 협력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설계·구매 지원, 기술 협력, 교육 훈련 체계 고도화 등 다방면에서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선박 수주 기회를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HD현대는 모로코 진출도 노리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모로코 국립항만청이 진행하는 카사블랑카 조선소 운영권 입찰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입찰 시 해당 생산시설을 30년간 사용할 수 있다.
모로코는 조선업 부흥을 통한 대외무역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모로코는 오는 2040년까지 상선 100여척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모로코는 현지에서 건조한 선박을 이용할 계획이지만 조선소 운영 경험이 적어 해외 조선사에 위탁하기로 했다. 모로코는 현재 카사블랑카에 아프리카 최대인 21만 제곱미터(㎡, 6만3500평) 규모의 조선소를 조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HD현대는 페루, 필리핀에 협력 조선소를 두고 있다. HD현대미포의 자회사 HD현대베트남조선을 통해 현지 법인도 운영 중이다. HD현대는 최근 한국을 국빈 방문한 또 럼 베트남 당서기장 주관으로 열린 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베트남 최대 국영 해운사인 베트남해양공사(VIMC)와 ‘포괄적 조선 협력에 관한 MOU’을 맺기도 했다.
그동안 HD현대, 한화오션은 한·미 조선업 협력 방안 ‘마스가 프로젝트’에 힘을 싣기 위해 미국 내 조선사와 협력, 인수 등을 추진해왔다.
HD현대는 올해 4월 미국 해양·방산 1위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군함·상선 협력 가속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건조 비용, 납기 개선을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했다. 6월에는 미국 내 선박 건조 협력 파트너사인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와 ‘미국 상선 건조를 위한 전략 포괄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화그룹은 2024년 12월 1억달러(약 1400억원)를 투자해 미국 필리조선소(현 한화필리십야드)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1970년대 후반 이후 50년 만에 미국 조선소에 발주된 수출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수주했다.
이 같은 국내 조선사들의 해외 사업장 확대 행보는 생산기지 다변화를 위한 차원으로 분석된다. 공동 수주, 현지 저비용 생산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지 조선소 신규 설립, 인수 등 적극적인 투자 대신 협력 방식을 이어가며 실질적인 글로벌 사업장 확장 효과와 국내 생산능력 부족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거점을 확보하면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면서 난이도가 낮은 선박 건조를 해외 현지에서 하고 국내에서는 기술집약형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며 “MRO 측면에서도 무조건 선박을 국내 들여오기보다 가까운 해외 거점을 활용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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