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산업혁명의 주제를 넘어 인류 문명의 전환점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AI 투자는 미래의 가능성보다 현재의 경쟁력 확보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기술이 현실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 국가들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AI 투자가 이어졌지만 최근 AI를 도입한 기업 중 성과를 거둔 기업은 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의 ‘기대’를 나타내는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보고서에서도 이제 지금까지의 생성형 AI와 파운데이션 모델 등은 기대가 현실의 가혹함을 만나는 ‘환멸(Disillusionment)’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보통 부풀려진 기대에 대한 실망과 재평가가 나타나는데, 지금 주위의 모습과 비슷한 것으로도 보인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기술들이 이러한 ‘하이프 사이클’을 지나 왔지만 AI의 하이프 사이클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AI 관련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유용성과 성패 여부를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 하이프 사이클의 하락 곡선에 접어들면서 현재의 AI 기술의 한계에 대한 가혹한 평가가 나오지만, 아직 미래의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크게 남아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AI의 기대와 현실을 가르는 핵심 변수는 ‘사람’, 더 구체적으로는 ‘문화’다. 인류 문명을 바꿔 온 사건들은 언제나 사회적 변화를 동반했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견고한 프로세스 안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는 기술뿐 아니라 조직 문화와 프로세스 변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의 문화와 프로세스 변화는 사람이 기술에 맞출지, 기술이 사람에 맞출지에 대한 미묘한 줄타기 같은 선택이기도 하다. 기술을 사람에 맞추는 ‘커스터마이즈’ 측면은 지금까지 국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국내 솔루션 업체들이 내세우는 최대 강점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AI 시대로의 전환 속에 특유의 조직 문화에 안주하는 것은 변화 효과를 떨어뜨리고, 자칫 변화의 시류에서 동떨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기술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AI 이전에도 반복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미뤄온 기술적·문화적 부채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이다. 변화를 늦출수록 고통은 커진다. 지금 그 부채를 청산할 각오를 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AI 시대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권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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