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율의 자동차 관세로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가로막힌 중국 전기차 업계가 한국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있다. 최근 BYD에 이어 샤오펑(Xpeng)까지 한국 법인 설립을 마치며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전기차 업체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기차 점유율이 일부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샤오펑의 전기 SUV G6와 G9. / 샤오펑
샤오펑의 전기 SUV G6와 G9. / 샤오펑

최근 중국 전기차 제조사 샤오펑은 한국 진출을 위해 ‘엑스펑모터스코리아(Xpeng Motors Korea)’를 설립했다. 회사는 법인 설립 이후 구성원과 네트워크를 갖춘 뒤 이르면 2026년 상반기 본격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샤오펑은 2014년 설립된 중국 전기차 제조사다. 역사는 짧지만 전동화와 자율주행 등 기술력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46개국 이상에 진출했으며, 올해 판매량 기준 글로벌 전기차 6위에 오를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샤오펑이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6’를 한국 시장에 선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2023년 처음 공개된 G6는 중국 현지에서 판매를 견인하는 주력 모델이다. 800볼트(V) 아키텍처 기반으로 설계돼 중국 주행가능거리(CLTC) 기준 1회 충전 시 최대 725킬로미터(㎞)를 주행할 수 있으며,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2분에 불과하다.

지커의 중형 전기 SUV 7X. / 지커
지커의 중형 전기 SUV 7X. / 지커

샤오펑 외에도 다수의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한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월 말에는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그룹 지리홀딩스의 고급 브랜드 ‘지커(Zeekr)’가 ‘지커 인텔리전트 테크놀로지 코리아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해당 법인은 ▲자동차 및 관련 제품의 수입 ▲유통·판매·서비스 ▲자동차 배터리 및 관련 시스템 소재 개발·제조·가공·판매·임대 서비스업 등을 목적으로 한다.

지커는 김남호 전 폴스타코리아 프리세일즈 총괄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한국 시장 분석 및 딜러사 선정 등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자사 로고를 국내 상표로 등록했으며, 전기 SUV 모델 ‘7X’의 상표 출원도 완료했다.

중국 4위 완성차 제조사 창안자동차 역시 한국 진출을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한국 사업을 담당할 인력을 충원 중이며, 연내 한국 법인 설립과 조직 구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신생 전기차 제조사 립모터와 샤오미 산하 전기차 업체 샤오미 오토 역시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YD 전기 세단 씰 다이내믹 AWD. / BYD코리아
BYD 전기 세단 씰 다이내믹 AWD. / BYD코리아

업계에서는 올해 1월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 BYD의 사례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한국행을 가속화했다고 본다. BYD는 소형 전기 SUV ‘아토3’, 퍼포먼스 전기 세단 ‘씰’, 중형 전기 SUV ‘씨라이언 7’을 잇따라 출시하며 ‘가성비’ 전략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집계에 따르면 BYD의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3월 첫 인도 물량 10대를 시작으로 ▲4월 543대 ▲5월 513대 ▲6월 220대 ▲7월 292대 ▲8월 396대 등 총 1947대를 판매했다. 특히 4월에는 국내 전체 전기차 판매의 14.6%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가성비 전략을 내세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대거 진출할 경우, 국산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이 잠식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국내에서 판매량이 많은 소형·중형 전기 SUV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BYD의 진출로 상당 부분 희석됐다”며 “배터리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 라인업이 확대되면 국산 전기차 점유율이 일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샤오펑과 지커 등이 첫 출시 모델로 중형 SUV를 선택한 만큼,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5, KGM 토레스 EVX, 무쏘 EV 등과 직접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에 대응할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