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와 함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양강 구도를 형성한 빗썸이 이재원 대표 체제 하에서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가상자산 대여 상품과 해외 오더북 공유 등으로 잇따른 구설에 휘말리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피치 못할 손실을 입기도 해 금융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내달 21일부터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인 ‘렌딩플러스’를 위탁 운영에서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동안 빗썸의 코인 대여 서비스는 자산운용기업 블록투리얼이 위탁 운영해왔다.
강제청산 기준도 완화했다. 기존에는 보유 자산 가치가 일정 상환레벨(1.07배)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 청산됐지만, 앞으로는 이 기준이 사라지고 대여 비율이 95%에 이르면 자동 상환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초 새로운 가상자산 대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담보 가치를 초과하는 레버리지 대여를 허용하지 않고, 다른 업체와의 협력·위탁 등을 통한 간접 형태 대여 서비스 운영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빗썸의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는 지난 7월 출시됐다. 투자자가 보유한 자산이나 원화를 담보로 거래소로부터 다른 가상자산을 빌리는 서비스다. 코인을 빌린 뒤 높은 가격에 팔아 시세가 하락하면 다시 사서 상환하는, 주식 시장의 공매도와 유사한 방식의 거래다.
출시 당시 이용자 자산을 담보로 최대 4배까지 가상자산을 대여해 리스크가 적지 않은데다 자칫 사행성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금융 당국이 우선 가이드라인 마련 전까지 신규 영업 중단을 요청했지만, 빗썸은 서비스를 강행했다.
결국 빗썸은 지난달 23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DAXA)로부터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에 대해 ‘경고’ 조치를 받게 됐다. 닥사는 홈페이지에 “빗썸의 코인 대여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닥사가 함께 마련한 ‘가상자산사업자 신용공여 업무 가이드라인’의 이용자 보호 기준을 위반하므로 서비스 이용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는 내용을 게시했다.
이러한 행보로 금융당국 눈 밖에 났다는 말들이 업계에 오갔다. 실제 경고를 받은 이후 이찬진 금감원장과 가상자산사업자와 첫 만남에 5대 주요 거래소 중 이재원 빗썸 대표만 초청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 금감원장은 이 자리에서 “고위험 상품 출시 등 단기 실적에만 몰두한 왜곡된 경쟁으로 이용자 신뢰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빗썸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이달 초 렌딩플러스 이용자의 강제 청산으로 빗썸에서만 유독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 가격이 급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테더 가격은 순간적으로 1400원대에서 5755원까지 폭등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타 거래소 최고가인 1700원보다 높은 가격에 강제 체결됐다.
이에 빗썸은 지난 13일 오전 6시 22분부터 3분간 발생한 테더 시세 급등으로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을 전액 지원하겠다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선 이에 대해 빗썸의 이용자 보호 장치가 정상 작동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엔 호주 가상자산거래소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한다고 공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더북 공유는 거래소 간 동일한 호가창을 공유해 매수·매도 주문을 함께 처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국내 투자자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자금세탁방지 체계가 미흡할 경우 관리감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앞서 이와 관련 이재원 대표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소환돼 조사받기도 했다. 현재 FIU는 이달 초부터 빗썸의 오더북 공유와 관련해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 박광 FIU 원장은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에 “아직 검사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빗썸의 오더북 공유는 특금법상 고객 정보 확인 및 기록 의무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상 불공정 거래 규제 측면에서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국내 법규가 요구하는 수준의 고객 정보 확보 및 불공정거래 감시 의무를 이행하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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