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터리에 사활 건 구광모 LG회장의 초강수

이광영 기자
입력 2021.10.27 06:00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조직이나 인사 개편을 단행하기보다 현재 조직과 인재를 잘 다독여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정부 고위급 또는 주요 대기업 인사에서 흔히 적용되는 사례다.

하지만 LG는 배터리 전쟁 최전선에 선 장수를 교체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지금의 LG에너지솔루션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김종현 사장 대신 LG그룹 ‘2인자’이자 ‘재무통’으로 불리는 권영수 LG 부회장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깜짝 놀랐을 정도의 대형 인사다.

권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특급 소방수’로 정평이 나있다. 2007년 대규모 적자에 시달린 LG디스플레이, 2012년 2차 전지 본격 육성에 나선 LG화학, 2015년 만년 3등주의에 젖은 LG유플러스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는 2012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은 당시 아우디, 다임러 등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 업체로부터 수주를 이끌었다. 취임 2년만에 전기차 배터리 고객사를 10개에서 20개쯤으로 두배 늘려 LG화학을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시장 1위에 올렸다.

권 부회장의 이번 선임이 ‘독이 든 성배’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배터리 시장은 권 부회장이 이끌던 당시와 사뭇 달라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더이상 추격자가 아니다. ‘퍼스트무버’다. 수많은 완성차 기업이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민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가장 어려운 미션이 권 부회장에게 주어진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실제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GM,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 세계적 완성차 기업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200조원 규모의 수주 물량을 책임있게 공급해야하는 입장이다. 현대차 코나, GM 볼트의 리콜과 같은 이슈가 재발하지 않도록 체질 개선도 절실하다.

고객사였던 완성차 기업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 내수시장을 강점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한 중국 CATL 등과의 주도권 싸움도 현재진행형이다. 투자금 확보를 위한 기업공개(IPO)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하는 숙제도 있다.

권 부회장의 CEO 선임은 구광모 LG 회장의 공개적인 승부수이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인사를 발표하며 ‘회사의 선제적인 미래 준비를 위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경영자를 선임한다’는 구 회장의 의지와 믿음이 담긴 인사라고 평가했다. 3년간 인사 및 조직개편에서 ‘안정 속 혁신’을 택한 구 회장이 그룹의 캐시카우에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본격적으로 덧칠한 것이다.

구 회장의 복심이자, 그룹 2인자인 권 부회장의 선임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그룹 ‘제1 핵심 사업’이라는 인식도 확고해질 전망이다. 그만큼 부담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 부회장은 커리어 내내 이런 부담감을 극복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왔다. 권 부회장의 3년 만의 계열사 복귀전을 택한 구 회장의 승부수가 통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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