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콘텐츠 전달 구조의 변화: 넷플릭스와 디즈니, 그리고 웨이브 비교
현재의 방송과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상호소통적(interactive) 미디어 기술과 정보와 콘텐츠에 대한 수용자 확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으로 S-곡선과 임계(질)량(Critical Mass)의 관계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임계(질)량(Critical Mass)이란 사회 시스템 내에서 초기 일정 수의 구성원들이 선도적으로 신기술 혹은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그들의 만족도에 따라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 기술을 수용하는 시작점을 가리킨다. 이 지점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기술은 ‘자가발전 혹은 상승’(self-sustaining)이 가능해진다. 시장에서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호소통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사회 시스템 내에서 안정적으로 확산하려면 구성원들이 새로운 정보와 콘텐츠에 흥미와 매력을 보여야 한다. 즉, 새로운 미디어기술과 정보와 콘텐츠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사용자들에게 충분한 흥미와 매력을 불러일으켜야 다른 구성원들도 그것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트랜드가 생겨야 확산 속도가 더욱 가속화한다.
사용자를 유혹할 흥미와 매력을 제공하는 방법은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사용을 통한 학습’(Learning by using)이다. 더 많은 사람이 신기술 혹은 아이디어를 수용할수록 사용이 더욱 증가한다. 그것으로 인해 그 기술 혹은 아이디어를 더욱 많이 학습하게 된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둘째,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ies)의 발생이다. 특정한 기술 혹은 아이디어를 사용하는 사용자가 더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것을 바탕으로 이용 가능성이 증가한다. 그리고 다양한 호환성 제품 혹은 서비스와 기술이 생겨남으로써 사용자 이익이 더욱 증가해 확산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셋째, 생산을 위한 ‘규모의 경제(Scale economies in production) 발생’이다. 기술이 발전하여 제품 혹은 서비스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그 기술은 더욱 소비자 편의가 늘어나 확산이 증가한다.
넷째, 정보의 증가(Increasing information)다. 기술 혹은 아이디어가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하면 그것에 대한 사용 이익에 대한 이해와 인지가 사회 시스템 내에서 넓게 일어난다. 더욱 많은 수용자가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상호 연관성’(Technological interrelations)이다. 기술이 확산되면 그와 연관된 하부 구조를 이루는 기술과 제품 혹은 서비스도 사용자 지원 차원에서 동시에 발전되고 확산된다.
넷플릭스의 성공 방정식
1997년 넷플릭스(Netflix)가 세상에 등장하며 비디오와 DVD 유통시장의 혁신적 변화를 일으켰다. 비디오와 DVD를 우편 혹은 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해 2007년 영화의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시장 변화를 이끌었다.
미국에만 대여점을 5500여 개를 보유한 기존 시장의 강자인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의 등장에 크게 동요하거나 경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넷플릭스의 혁신적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점차 시장의 균형에 균열이 일어났다.
블록버스터는 뒤늦게 위기감을 느끼고 유사한 서비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소비자 반응은 이미 넷플릭스로 기울어진 뒤였다. 결국, 2013년 블록버스터는 파산했다. 넷플릭스는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올라서며 북미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된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 시장까지 넘어섰고, 수용자가 돈을 지불하고 영상을 시청하는 서비스 플랫폼 가운데 최고의 위치에 도달했다.
넷플릭스의 이러한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소비자가 기존 방송 플랫폼을 떠나 넷플릭스로 돌아선 이른바 ‘코드 커팅’(Code Cutting)이 증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단연 타 플랫폼 대비 저렴한 이용료와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시청도구를 통한 접근 편리성이다. 또 누구나 플랫폼에 시험적으로 접근해 서비스를 이용해 볼 기회 제공, 소비자의 취향과 시청 이력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추천 알고리즘, 소비자의 선호도를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해 파악하고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등도 성공에 한몫을 했다.
넷플릭스의 시장확장을 앞에서 설명한 확산이론에 대입해 생각해보자. 사용자에게 충분한 흥미와 매력을 느끼게 하는 전략적 방법이 그대로 나타난다.
타 플랫폼과 비교해 장점으로 언급한 것 중 누구나 플랫폼에 접근해 서비스를 경험할 기회의 제공(1개월 무료 이용)은 ‘사용을 통한 학습’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학습한 수용자는 주변의 지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 플랫폼을 알리고,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로 인해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극대화했다.
왕의 귀환
‘경쟁 없는 시장은 흥미와 발전이 없다.’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의 속성을 요약한 한마디다. 언제까지나 시장을 호령할 것으로 여겼던 넷플릭스에게 2019년 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세계 콘텐츠 제작 시장의 최대 강자인 디즈니(Disney)사다.
디즈니는 1995년 미국 ABC를 시작으로 2005년 픽사(Pixar), 2009년 마블(Marvel), 2018년 21세기폭스의 영화와 TV 사업, 2019년 스타워즈(Star Wars)의 루카스필름을 차례로 인수합병(M&A)하며 난공불락의 콘텐츠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 회사가 ‘디즈니+’라는 OTT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규 유료 가입자 유입에도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해 애플(Apple), AT&T의 워너미디어(Warner Media), HBO, NBC 유니버설(NBC Universal) 등의 기업들도 OTT 서비스 시장에 진입하였거나 준비한다. 2020년은 OTT 시장 글로벌 경쟁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증가세 주춤이 강력한 경쟁자의 시장 진입에 따른 영향이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만, 시장 상황은 넷플릭스가 상당히 유동적인 위협에 직면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장 미디어 콘텐츠 왕국 디즈니와 그 연관 기업들의 넷플릭스 콘텐츠 수급 라인 이탈이 가시화할 것이다.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물론 넷플릭스도 이러한 콘텐츠 수급 라인의 이탈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동안 자체 콘텐츠 제작에 많은 공을 들이기는 했다. 2018년 넷플릭스는 외부콘텐츠 공급자로부터 콘텐츠 라이선스 확보를 위해 141억 달러(약 16조 9000억 원)를 썼다. 자체 콘텐츠 제작에도 60억 달러(약 7조 2000억 원)를 들였다.
콘텐츠 라이선스 확보와 자체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제원을 투자하는 넷플릭스와는 다르게 디즈니는 2020년 자체 콘텐츠 제작에 약 10억 달러, 콘텐츠 라이선스에 15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보다 적은 지출은 외려 이미 방대한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여기에 더해 OTT 사용료를 넷플릭스보다 2달러 낮은 월 6.99달러(약 8400원)로 책정했다. 2024년까지 적자를 감수하고 자체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디즈니와 산하 제작자 그리고 유명 프랜차이즈의 모든 콘텐츠를 디즈니+로만 독점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디즈니의 막강한 자본력과 콘텐츠 보유력은 시장에서 소비자를 유인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것이다.
디즈니+라고 약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협력사 또는 제휴 제작사라고 불리는 이른바 ‘서드파티 ‘콘텐츠가 부족하다. 이는 수용자의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져 디즈니의 소비자 유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서드파티 콘텐츠를 바탕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디즈니+에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동시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을 보면 디즈니+의 선택에 따라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지가 확실해질 것이다.
웨이브의 위기와 기회
OTT 서비스 시장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시점에 한국 사업자들은 어떤 계획과 전략을 마련할지 궁금해진다. 국내 콘텐츠 시장이 미국계 거대 공룡들의 각축장이 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국내 OTT 사업자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국내 소비자 성향을 국내 기업이 제일 잘 알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넷플릭스 상륙을 계기로 한국 OTT 사업자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며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선 다른 시장에서와 같은 급격한 코드 커팅을 유발시키지 못했다. 이는 국내업체에게 기회로 보인다.
물론 넷플릭스의 장점으로 짚었던 것들의 일부를 벤치마킹하여 활용한 것은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콘텐츠 수용의 원활성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넷플릭스는 유료회원에게 플랫폼에 올라온 모든 콘텐츠를 추가 비용 없이 무제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와 달리 웨이브 플랫폼은 유료회원임에도 단건 별도 구매를 해야 하는 콘텐츠가 많다. 이는 자칫 소비자에게 타 플랫폼과의 비교를 유발하고, 이탈을 자극하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소지가 충분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웨이브가 2020년 3월 5일부터 유료회원 제공 영화 메뉴에 변화를 준다는 발표를 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이용할 영화 편수를 대폭 늘리고, 최신작품도 추가하며, 추가 비용 부담 없이 더욱 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새 계획은 분명 소비자에게 고무적이다. 하지만 단건 별도 구매 콘텐츠를 여전히 플랫폼에 올려놓는다. 전략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의 콘텐츠 시장은 국경 없는 단일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다. OTT 서비스가 그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이전의 콘텐츠 제공 시장에는 국가 간 구역의 명확성이 강조됐다. 국가 간 전파월경(인접 국가의 전파가 자국민의 TV 안테나에 잡히는 현상)으로 인한 문제가 쟁점이 된 적도 있다. 타국 콘텐츠가 자국민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인해 논쟁을 벌였던 때가 있었다. 현 상황에선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OTT 서비스의 등장은 다양한 문화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콘텐츠 보유력과 자본력으로 무장한 거대 공룡이 시장을 독점 혹은 과점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혼란한 OTT 전국시대에 국내 OTT 사업자가 국내 소비자의 성향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시장에서 성공하고 영속할 수 있는 비장한 각오와 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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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천 Global ICT Lab 소장은 미국 오하이오대학(Ohio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광고/PR 부전공)를, 뉴욕주립대 버펄로(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융합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분석 그리고 뉴미디어를 교육하고 연구했다. Global ICT 연구소를 개소해 빅데이터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 산업, 정책 등의 연구와 자문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전기공사협회 남북전기협력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사)국방안보포럼 ICT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블록체인의 사회 확산과 발전, 남북전기 교류의 발전, 국방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