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한 미국 인텔이 네덜란드 ASML의 신형 극자외선(EUV) 노광기 초도 생산분을 전량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텔은 경쟁사인 대만 TSMC, 삼성전자에 앞서 1차 물량을 모두 선점하면서 2030년까지 파운드리 2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현실화 하겠다는 포부다.

EUV 공정은 선폭이 나노(㎚·1㎚=10억분의 1m) 수준인 초미세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빛보다 파장이 14분의 1가량 짧아 반도체 공정 중 가장 앞서 있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저전력·고효율 칩을 만들 수 있는데, 회로를 좁히면 칩 크기가 줄어 한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팻 겔싱어 CEO / 인텔
팻 겔싱어 CEO / 인텔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하이NA(High-NA) EUV 노광기인 ‘트윈스캔 EXE:5200’ 6대를 ASML로부터 최종 납품받기로 했다. 당초 알려진 5대에서 1대 늘었다. 2024년 말 또는 2025년 초부터 공급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 장비의 대당 가격은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초 이천 M16 공장에 들여온 EUV 노광기가 2000억원쯤인데, 환율 상승을 감안해도 3배에 육박하는 초고가다.

하이NA EUV 노광기는 인텔이 2025년부터 적용할 초미세공정인 18A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 장비는 이전 EUV 노광기보다 더 향상된 0.55NA(노광렌즈수차)를 제공해 더 정밀한 공정이 가능하다.

TSMC와 삼성전자도 ASML에 하이NA EUV 노광기를 주문했다. 2027년까지 배정된 20대쯤의 물량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TSMC는 대만 생산 기지에 100대가 넘는 EUV 노광기를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 설치된 EUV 노광기는 총 15대쯤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2021년 M16 공장에 EUV 장비 2대를 설치해 4세대 10나노급 D램 EUV 적용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연말부터 화성, 평택 등에 10대의 EUV 장비를 추가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SML은 EUV 노광장비 생산 능력을 2026년까지 연간 90대, 하이 NA EUV 장비는 2028년 20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편 ASML은 16일 경기도 화성에서 '뉴캠퍼스' 기공식을 개최한다. ASML은 2021년 11월 화성시와 업무협약(MOU)를 맺고, 2400억 규모의 화성 뉴캠퍼스에 대한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화성 뉴캠퍼스는 동탄 2신도시 도시지원시설 용지에 건립된다. 이 공간에는 AMSL 코리아 신사옥과 재제조센터(LRC, Local Repair Center), 글로벌 트레이닝 센터, 익스피리언스 센터(체험관) 등을 포함한 새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6일 기공식을 통해 피터 베닝크 ASML CEO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일반 EUV 노광기는 물론, 반도체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하이NA EUV 노광기 공급 관련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인텔의 등장으로 차세대 EUV 노광기 확보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장비 주문부터 실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사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삼성전자가 EUV 장비 확보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