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 내부통제 부실이 심각한 수준이다. 개별 직원 횡령도 모자라 전 회장 친인척이 연루된 부적정 대출까지 발생하면서 기강 해이가 조직 전반에 퍼져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은 지난 2년간 철저한 내부통제 구축을 외친 임종룡 회장의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겼다. 조직 내부 단속에 실패한 임 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조직 문화 혁신은 물론, 고객 신뢰 회복까지 가능할지 미지수다.
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3일부터 올해 1월16일까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법인·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42건(20개 업체), 모두 616억원 규모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28건(350억원)이 부적정 대출이다. 대출 서류 진위 확인을 누락했거나 담보·보증 평가가 부적정했지만 대출이 실행됐다. 대출금의 용도외 유용도 있었다. 부적정 대출로 분류된 건 중 상당수에서 연체 등 부실이 발생했다. 우리은행이 파악한 손실액은 최대 158억원이다.
우리은행 측은 부적정 대출 가운데 다수를 처리한 우리은행 본부장 A씨(전 선릉금융센터장)를 면직 처리하는 등, 관련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감원 보고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도 보고는 하지 않았다. 수사당국 고소는 이달 9일에나 이뤄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일부 임직원의 일탈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금융감독원과 우리은행 측 모두 손 전 회장의 개입을 두고 선을 긋고 있지만 대출 규모와 건수를 봤을 때 상급자 개입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무엇보다 우리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이었으면 이런 일이 가능했겠냐는 질타가 높다. 여신 절차 개선, 감시‧감독강화, 내부통제 강화 등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적정 대출이 발생한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출이 부실로 이어질 경우 위험부담이 큰 만큼,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문제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사건으로 임종룡 회장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 부적정 대출과 함께 지난해 불거진 우리은행 고문 선임 건도 다시 도마위에 오르면서 조직 전체에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11월 우리은행이 손 전 회장을 고문으로 위촉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손 전회장은 ‘라임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문책경고)를 받아 자리에서 내려왔다. 문책경고를 받은 인물은 임기 만료 후 3년간 금융회사 임원을 맡을 수 없다. 논란이 지속되자 부담을 느낀 손 전 회장이 스스로 자리를 내놨지만 당시 임 회장이 취임 후 강조했던 ‘공정한 인사’ 원칙엔 오점이 남았다.
만약 우리은행 고문 위촉 당시 이번 부적정 대출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임 회장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 측은 “손 전 회장 고문 위촉은 은행과 관련된 사항으로 관례이자 예우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인 만큼 임종룡 회장의 인사 원칙과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건”이라면서 “이번 부적정 대출을 두고 임 회장은 철저한 검사와 함께 위법 사항이 있다면 강력히 조치하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오는 10월 진행될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앞서 발생한 금융사고 등 우리금융그룹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강민국 국회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우리금융그룹 금융사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임종룡 회장이 취임 이후인 2023년 3월 24일부터 2024년 6월 20일까지 1년 3개월 동안에만 발생한 금융사고는 4개 계열사에 총 9건(142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들어서 김해지점 대리가 180억원을 횡령한 사건도 발생했다.
한편 이날 임 회장은 긴급 임원 회의를 열어 손태승 전 회장 관련한 부적정 대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철저히 반성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위기를 계기로 선도금융 회사가 되자고 당부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