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등 5개사로 이뤄진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연초부터 금융가는 물론,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시중은행도 없지만 지난해 연결 기준 순이익만 6조원에 육박하는 등,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를 제치는 성과를 냈다. 마침 이재용 삼성 회장의 무죄 판결로 운신의 폭도 넓어진 상황. 올 한해 달라질 삼성금융의 행보를 따라가 봤다. [편집자주]
2월 3일은 이재용 삼성 회장이 기나 긴 사법 리스크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날로 기록될 법하다. 이날 무죄 판결을 받고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취재진이 둘러쌌다. 기자들이 "주주들 피해 예상 못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이재용 회장은 묵묵부답, 무표정한 얼굴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이 회장의 혐의는 크게 '부당합병'과 '부정회계' 두 가지였다. 법원은 부당합병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삼성 미래전략실의 조율에 의해 합병이 결정됐다"며 "두 회사의 의사와 관련 없이 합병이 결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부정회계에 대해서도,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 혐의로 기소됐던 2020년 9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10여년 가까이 끌어왔던 해묵은 이슈의 종지부를 찍게 된 셈이다.
검찰이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결정하긴 했지만,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법리 오해 등만 보는 대법원 심리가 항소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견해다.
무죄 판결 이후 이재용 회장의 행보에는 한껏 힘이 실린 모양새다. 그는 다음날인 4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과 회동했다. 올트먼과 손 회장은 이재용 회장에게 미국 초거대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720조원 규모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협력 3자 논의에서 이재용 회장은 스타게이트 합류에 대한 논의 등을 이어간 것으로 아울러 모바일 전략, AI 전략에 대해서도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일 AI동맹 신호탄을 함께 쏘아올리며 자유로운 경영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축포였다.
사법리스크 해소한 이재용 회장, 삼성금융에도 훈풍 기대감
이 회장 무죄의 훈풍은 '삼성전자'를 축으로 하는 이른 바 테크 중심 계열사로 그치지는 않을 듯하다. 삼성생명을 중심축으로 하는 삼성금융 계열사 기업가치 제고에도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푼다. 삼성금융 계열사들은 최근 실적 개선세가 가파르다. 그룹 내 기업가치 제고 유인이 커지면서 더이상 '삼성후자'로 불리기엔 민망한 상황이 됐다.
마침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자사주 매각을 골자로 한 주주환원 청사진을 내놨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지만, 금융가에선 삼성금융 계열 거버넌스에 대규모 변화를 예상하는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고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은 이후 삼성금융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여러차례 드러냈다.
지난 2022년 2월 삼성화재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직원들을 만난 데 이어, 같은해 10월에는 30대 젊은 삼성생명 지점장들을 서초사옥 집무실에 불러모아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는 당시 이 회장이 금융 계열사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들과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만들어진 자리였다. 간담회에서 이재용 회장은 젊은 지점장으로서 겪는 고민과 앞으로의 목표 등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지점장 설명이 있을 때마다 이 부회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이듬해에는 삼성증권 본사를 찾았다. 회사의 핵심인 현장 영업 직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조직 내 소속감을 고취시켰다. 이재용 회장이 삼성 금융계열사를 순차적으로 방문하면서 명실상부한 '삼성그룹'의 리더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소통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도 달라질 삼성에 대한 기대감이 부푼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종료는 향후 적극적 경영참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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