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발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삼성 지배구조의 한계를 보여줬습니다."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자사주 매입·소각 정책이 본격화하자 계열사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하다. 자사주 소각으로 최대주주 지분율이 법상 허용치를 초과하고, 이에 따른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우려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할 때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매물로 내놔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넘게 들고 있으면 안된다는 금산분리법 영향이다.
삼성화재가 밝힌 자사주 소각 정책도 규제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삼성화재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율이 보험업법상 한도인 15%를 초과한다. 그이상 지분을 보유하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자회사 편입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국 삼성 금융 계열사의 밸류업 정책은 삼성생명의 금융 지주사 형태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한영도 상명대학교 교수는 문제의 상당 부분이 삼성그룹이 가진 거버넌스 체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단기적으로는 삼성의 핵심 경영철학이었던 ‘삼각편대형 경영체제’를 부활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지주사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랜 기간 기업 지배구조를 살펴 본 한영도 교수로부터 삼성이 마주한 과제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 많은 기업들이 밸류업을 한다고 하면서 자사주 소각을 시행하고 있다. 효과가 있는 것인가.
"최근 많은 기업들이 밸류업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방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 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자사주 소각보다는 재투자 등 미래 성장 경쟁력 강화가 더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자사주 소각이 기업 성장동력 확보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ㅡ 그럼에도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하는 이유는?
"우선 오너 기업이냐,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기업이냐에 따라 목적은 조금 다른 것같다. 기본적으로 책임경영 차원에서 자사주를 소각한다는 이유는 같지만, 오너 기업의 경우 경영권 강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오너가 없는 은행이나 KT 등은 자사주 매입을 경영진의 평가 제고 목적으로 활용하는 듯보인다.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주가를 부양시키면 평가를 좋게 받을 수 있어 해당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없지 않다."
ㅡ 삼성전자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들고 나왔다. 금융 계열사에 미칠 영향은?
"삼성전자 입장에서야 유불리가 있을 수 있지만, 삼성 금융 계열사 입장에서 본다면 장기적으로 재무 건전성 개선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 금융 계열사 경영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 신청이 완료된다면, 삼성생명이 그룹 중간 지주사 역할로 자리잡게 된다.
사실 삼성금융 얘기를 하기 위해선 삼성 지배구조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삼성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삼성생명은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만큼 중요도가 더욱 커질것으로 예상된다."
ㅡ 금산분리법, 복합기업집단법 등의 규제가 삼성 밸류업에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의 밸류업도 문제지만, 이번 사례는 규제에 따른 삼성 지분구조에 대한 한계를 보여줬다. 금산분리로 인해 지주사 전환도 못하고 있는데, 쉽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과도한 규제 완화는 자칫 금융 부실화를 낳을 수 있다. 완전히 푸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금산분리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조치가 제반돼야 한다.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좀더 유연한 삼각편대형 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ㅡ 삼각편대형 경영체제가 무엇인지.
"삼각편대 거버넌스란 ▲회장의 리더십 ▲컨트롤타워(비서실, 미래 전략실 등)의 체계적인 전략 ▲전문 경영인의 실행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지배구조 방식을 말한다. 그간 삼성은 독특한 삼각편대 거버넌스 체계를 선대 회장시절부터 확립해왔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보니 삼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본다. 현재 사업지원TF가 그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새로운 협업형 거버넌스 모델을 재구축해 글로벌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해야한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지주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ㅡ 결국 지주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주 전환은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진행하는데 효율적인 역할을 한다. 전문경영인에게만 의사결정을 맡긴다면 당장의 집중은 가능하지만 미래사업에 대한 결정적인 의사결정은 못한다.
과거에는 비서실이나 미래전략실이 그 역할을 했지만, 법에서 벗어나 있던 것이 사실이다. 적은 지분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단행하는 것은 과도한 경영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지주사다."
ㅡ 지금의 삼성을 본다면, 지주 전환과 경영권 강화는 서로 상충된 과제로 보인다.
"결국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지주 전환을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당장은 어렵지만 결과적으론 지주 전환을 통해 합법적인 지배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삼성이 안고 있는 각종 규제 및 지분구조의 딜레마를 해결해야한다. 삼성이 당면한 현안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ㅡ 지주전환은 좀 장기적 과제로 보인다.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책임 경영 강화, 이사회 중심 경영 확대, ESG 경영 확산, 투명성 및 윤리 경영 강화 등의 방향으로 거버넌스 체계가 발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지주 회사 체제 전환을 통해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ㅡ 그러면 '삼성이 너무 다 해 먹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삼성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 국내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승계 법적리스크는 삼성경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국가 경쟁력을 떨어트린다. 정치권은 기업이 경영을 잘할수 있도록 도와야하는데, 규제쪽으로만 시각이 간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부의 배분은 다른 문제다."
☞한영도 교수는
KT 기획조정실 등에서 15년간 근무한 뒤 상명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마케팅 전공)를 취득한 뒤 상명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T알파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산업계 경영, 마케팅, 영업분야에서 산학협력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