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전화 참 잘하셨습니다. 딱 오늘까지, 요금을 최대 할인해 드립니다. 할인을 원치 않으실 경우에는 상품권 지급도 가능합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을 위해 A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자 안내원이 안내한 말이다. 그는 월 요금 할인, 상품권 제공, 전자기기 증정 등을 제시했다. 혜택이 곧 끝난다며 당장 가입하는 게 가장 좋다고 유혹했다.
선뜻 내키지 않았다. B통신사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상품권은 물론 설치비를 면제해주겠다"고 안내했다. 인터넷만 가입하려고 했는데 두 회사 모두 "TV+인터넷 결합상품에 가입 시 TV를 무료로 주겠다"고 유혹했다. 한 회사는 "추가 사은품 중 전자기기가 있는데 이를 되팔아 수익화하는 고객도 많다"며 묻지도 않은 팁까지 알려줬다.
이번엔 A통신사 상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에게 "이곳저곳 알아보고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A통신사 측은 "저희는 다른 통신사보다 나은 조건을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처음 권유받았던 상품권 혜택보다 상향된 조건이다. 애초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혜택이 사라진다더니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조건이 더 좋아졌다.
정보 탐색을 위해 포털사이트 검색 창에 인터넷을 치자 '인터넷 가입 사은품 많이 주는 곳'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뜬다. 블로그 등에는 통신사 인터넷 요금을 비교하는 글이 수없이 많다. 이 안에는 신규 가입자 유치에 혈안이 된 통신사만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2024년 12월)에 따르면 초고속인터넷 가입회선은 2472만1782개다. 숫자만 보면 2018년 12월(2115만4708개) 이후 6년 넘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건강한 성장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주위에서 기존 통신사 인터넷 가입자 중 '찬밥' 취급을 받았다는 고객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0대 직장인 A씨는 2023년 초고속인터넷 가입 당시 통상 3년 약정 대신 비싼 1년 약정을 맺었다. 1년 남은 집 계약기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후 사정이 바뀌어 집 계약을 연장했고 인터넷도 계속 사용했다. 애초 1년이던 약정기간이 6개월 더 늘었지만 통신사로부터 약정이 끝났다는 고지는 받지 못했다.
A씨는 통신사에 "왜 1년 약정이 끝났는지 안내해 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통신사 측은 "매번 계약 종료 사실을 문자로 통지하고 있다"며 "고객 마케팅 동의를 했는지 스팸 문자함을 확인하라"고 A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A씨는 또 "처음 가입할 때 '약정 끝나기 전 이사 시 인터넷을 옮길 수 있다'는 안내만 받았어도 3년 약정을 했을 것이다"라며 "인터넷 가입 후에는 통신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고객에게 문자 대신 전화 한통 하는 게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규 고객을 늘려 매출 신장을 꿈꾸는 통신사들의 바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신규 고객만 고객이 아니지 않나. 기존 고객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사은품 잔치만 벌이는 최근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적잖이 씁쓸하다.
김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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