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대 요금제를 4개월, 9만원대 요금제를 2개월 쓰신 뒤 원하시는 요금제로 변경하시면 됩니다."
매번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대리점·판매점에 듣는 말이다. 단말기 할인 등을 받기 위해 9~10만원대 이상 고가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은 이미 고착화됐다. 고객에게 지침을 내리는 이는 대리점과 판매점이지만 그 실상은 이동통신사가 그렇게 하도록 조종한다.
단말기 할인 등을 바라는 소비자 상당수가 울며 겨자먹기로 고가 요금제를 쓴다. 이를 '조삼모사'라 여기는 일부 고객은 차라리 자급제폰 구매 후 알뜰폰 요금제를 쓴다며 해당 지침에 반기를 든다.
최근 고가 요금제 유도 문제는 또 이슈가 됐다.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주 등으로 구성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단말기 할인이나 지원금을 미끼로 소비자의 고가 요금제 가입을 사실상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다.
KMDA에 따르면 단말기 할인을 미끼로 10만원 이상의 고가 요금제에 과다 장려금을 지급하는 통신사들의 정책이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소비자 선택권은 박탈당했다. 청소년과 고연령층, 저소득층 등 사회취약계층의 가입 장벽도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대폰 유통업계는 통신사들이 할당한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을 맞추기 위해 고객에게 고가의 요금제를 권유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최근 유통점에 목표 ARPU 상향을 통보하면서 유통점은 이를 맞추기 위해 고객에게 고가 요금제를 제안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매달 통신사들로부터 신규 고객을 넘어 기존 일반 사용자들 요금제도 올리라는 목표가 내려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가 요금제 유도는 이전부터 문제가 됐던 사안이다. 유통업계에서 수년간 통신사들에 개선을 촉구했으나 지켜지지 않으며 병폐처럼 굳어졌다.
통신사들은 "회사 입장에서 따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을 거 같다"며 사실상 고가 요금제 유도를 인정하면서도 개선에는 힘을 쏟지 않고 있다. 지침 주체인 통신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고가 요금제 유도 문제는 고착화해 풀 수 없게 된다.
결국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통신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국회도 강력한 법안 등을 마련해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가 최우선인 휴대폰 유통업계를 만들기 위한 범정부적 노력이 절실한 때다.
김광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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