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 대고 코 풀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3월 31일(현지시각) 내놓은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바라보는 구글의 속내는 이렇지 않았을까.
USTR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무역장벽으로 '한국 국회의 자국 콘텐츠사업자(CP)를 향한 망 이용대가 요구', '위치 기반 데이터(지도) 국외 반출 거부' 사안을 거론했다.
모두 구글이 당면해 있는 과제다. 구글은 이전부터 한국으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내라는 지적을 들었고 최근 한국 정부에 고정밀지도 반출을 요구했다. 망 이용대가란 CP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이동통신사 등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 내는 대가를 말한다.
'한국 국회가 구글에 요구하는 망 이용대가는 한국 ISP만 이롭게 한다'고 한 USTR 논리는 한국 국회가 해외 CP에만 망 이용대가를 요구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또 여전히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 안보 상황에 놓인 한국에 협의 없이 무턱대고 기밀정보가 담긴 지도를 내놓으라는 것도 비상식 행위다.
미국 정부가 앞장서 구글을 대변하는 모양새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구글을 위한 보고서였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구글이 트럼프 정부를 움직여 USTR 보고서가 나왔든 트럼프 정부가 알아서 구글 입장을 반영했든 중요치 않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트럼프 정부가 구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구글은 뒤에서 웃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의 입장은 언짢을 따름이다. 그간 한국에서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한국 패싱'을 벌인 당사자가 바로 구글이기 때문이다.
한국 CP인 네이버·카카오뿐 아니라 해외 CP 메타·디즈니플러스 등이 많게는 매년 수백억원씩 한국 통신사에 내는 망 이용대가를 구글은 거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구글의 국내 인터넷 트래픽은 2020년 25.9%, 2021년 27.1%, 2022년 28.6%, 2023년 30.6%으로 업계 최대 수준이다. 막대한 트래픽 관리를 담당하는 통신사들이 해당 대가를 내라고 읍소하지만 구글 앞에서는 '소 귀에 경 읽기'다. 구글은 미국, 프랑스에서는 현지 ISP에 망 이용대가를 납부하고 있으니 한국으로서는 더 기가 찰 노릇이다.
구글은 한국에서 법인세도 제대로 내지 않는다. 구글의 한국 법인인 '유한회사' 구글코리아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매출 상당수를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싱가포르 법인에 귀속하는 방법으로 한국에 내야 할 법인세를 회피한다.
구글코리아는 2023년 매출 3653억원을 올렸다며 법인세 155억원을 납부했다. 같은 기간 네이버가 4963억원(매출 9조6706억원), 카카오가 2417억원(매출 8조1058억원)의 법인세를 납부한 것을 생각할 때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과 한국재무관리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구글코리아의 추정 매출액은 약 12조1350억원으로 법인세액은 약 6229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구글코리아 발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구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번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다.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인터넷 시장 원리에 따라 망 이용대가를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인세 회피 의혹 관련해서도 "국내법과 국제조세협약에 따라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다"고 했다.
당시 김 사장이 스마트폰으로 국정감사장을 촬영하는 여유를 보이자 국내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 "한국 국회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은 매번 한미 정부 간 기울어진 힘의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고 일갈했다.
구글의 비겁한 '한국 패싱', 미국 정부를 통한 '찍어누르기'에 한국 국회는 분명한 경고장을 보냈다. 지난해 구글 망 이용대가 납부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이해민 조국혁신당·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USTR 보고서를 비판하며 "미국 간섭에 굴하지 않고 입법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힘의 논리에 의해 깨져버린 시장 균형을 다시금 맞춰나가겠다는 의지다.
한국 국회의 행동은 불합리를 합리로 바꾸는 작업일뿐 불합리를 합리라고 주장하는 쪽은 구글과 미국이다. 애석하지만 한국을 대하는 구글의 비합리적인 자세가 스스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래도 합리가 불합리를 이겨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글로벌 세계 정세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구글의 콧대가 앞으로 국회 입법 등을 통해 꼭 꺾이길 바란다.
김광연 기자
fun3503@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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