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내 오너 기업 주가도 희비가 엇갈렸다. 조선과 방산 등 수혜주를 잔뜩 보유한 한화그룹은 몸집을 크게 불렸다. 하지만 자동차와 반도체, 이차전지 등 고관세에 따른 무역전쟁 피해주 기업들은 잔뜩 움추린 모습이다.
27일 IT조선이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국내 10대 그룹사(삼성·SK·현대차·LG·포스코·롯데·한화·HD현대·GS·신세계) 계열 상장주식 138개(우선주 포함) 주가 추이를 확인한 결과, 이들 종목의 시총은 25일 종가 기준 1357조2677억원으로 집계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달 20일 1292조5997억원 대비 5.0%(64조6679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코스닥 합계 시총이 2425조5383억원에서 2546조204억원으로 4.9%(120조4821억원) 커진 것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증가율이다.
한화·GS 두 자릿수 성장… 삼성·현대차 우려 불구 이름 값
그룹별로 상황은 달랐다. 일단 다수 그룹 시총이 늘었다. 그중 돋보이는 곳은 한화그룹이다. 한화(16개) 시총은 지난달 21일 50조1796억원이었으나 25일에는 73조8357억원으로 47.1% 늘어났다. GS(9개) 시총도 11조2400억원으로 한 달 새 12.0% 증가했다. 신세계(6개, 4조5194억원)는 8.9%, 삼성(23개, 593조6184억원)은 7.8% 각각 늘어났다. 증가액으로는 삼성이 42조8770억원 불어나며 가장 컸다.
우려에도 불구, 후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16개)다. 현대차그룹 시총은 146조6380억원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2.0% 늘어, 자동차 관세에 비해 선전했다. 그래도 같은 기간 코스피·코스닥 시총 증가 폭(4.9%)을 밑도는 수치다. LG(16개) 시총은 159조9291억원으로 3.4% 늘어났는데 5일 상장한 LG씨엔에스를 제외하면 증가 폭은 0.2%에 불과하다. 포스코(6개) 시총은 47조2588억원으로 같은 기간 3.2% 늘었다.
가장 크게 감소한 곳은 HD현대로 시총이 25일 기준 75조5269억원으로 지난달 20일(81조6226억원) 대비 6.1% 감소했다. 계열 종목 9개 중 6개가 감소했다. 이 가운데 HD현대마린솔루션의 하락 폭은 29.0%에 달했다. SK 계열 종목(24개)도 238조8350억원에서 230조7014억원으로 3.4% 쪼그라들었다.
무역전쟁 직격탄 철강·車·배터리 추풍낙엽
그룹별 희비는 그룹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목이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철강·알루미늄 대상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데 이어 자동차·반도체 등으로 관세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 같은 우려에 현대차그룹의 현대차(-2.9%)·기아(-7.7%)에서만 시총이 4조원 이상 빠졌다. 대형 반도체 기업인 SK그룹의 SK하이닉스(-5.4%)은 8조원 증발했다. 삼성그룹의 삼성전자(7.1%)는 시총이 22조원 늘어나긴 했으나 작년 10월 360조원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20조원 작은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가 배터리 보조금 축소 등을 주장하고 있는 점은 이차전지 비중이 큰 그룹에 악재로 닥쳤다. 포스코그룹 포스코퓨처엠(-6.9%)은 시총이 약 한 달간 8289억원 빠져나갔다. LG그룹 LG에너지솔루션(0.8%)도 시총이 1% 미만으로 오르며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트럼프 수혜주로 꼽힌 종목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조선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미국 조선업계는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승했으나 고평가됐다는 전망이 최근 나오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HD현대그룹의 HD현대중공업(-0.16%)·HD한국조선해양(-8.4%)·HD현대미포(-13.2%)에서 시총이 2조원 이상 빠졌다.
반면 방산주 비중이 큰 한화그룹은 불안한 글로벌 정세를 타고 순항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로 삼은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로 유럽 내 방위산업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80.1%)에서만 시총이 13조원 불어났다.
다음 달에도 그룹별 시총 편차가 클 전망이다. 부진했던 업종은 오르고 급등했던 업종은 쉬어갈 것으로 예상돼서다. 이차전지·자동차가 다시 오르고 방산주는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FICC리서치부장은 “그룹주로 평가하기는 어렵고 그 안에 종목·사업이 어떻게 움직였냐가 중요하다”면서 “다음 달 초중반까지 등락을 보이겠지만 올라가는 그림은 유효하다.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는 반등세를 보이고 많이 올라왔던 조선·기계·방산은 조금 쉬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달 탄핵 선고도 불확실성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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