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며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메리츠증권이 연초부터 건전성 부담에 고심하고 있다. 부실여신이 1년 새 2000억원 가까이 불어난 가운데 홈플러스에 내준 대출이 부실로 분류될 수 있어서다.
회사 측은 확실한 담보권을 확보하고 있어 원금회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부동산 시장도 냉각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자금 회수를 낙관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2일 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 신평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메리츠증권의 고정이하여신은 6049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 4362억원 대비 38.7%(1687억원) 늘어난 규모다.
신평사 리포트에 2024년 실적이 공개된 주요 증권사 7곳(미래에셋·NH·삼성·KB·메리츠·하나·키움)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규모로도 삼성증권(8278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고정이하여신이란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급 여신을 통틀어 부르는 부실여신으로 3개월 이상 연체되거나 자금 회수 가능성에 문제가 있는 대출을 뜻한다. 요주의 등 잠재 부실여신까지 합친 요주의이하여신도 1년 새 8827억원에서 1조1564억원으로 31%(2727억원) 불어났다.
홈플러스에 내준 대출을 반영하면 더 커질 전망이다. 메리츠증권은 작년 5월 홈플러스에 7000억원의 3년 만기 선순위 담보 대출을 내줬고 일부 상환받아 현재 6551억원이 남았다.
지난달 4일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으로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최하위 등급인 ‘D’까지 내려간 상황. D등급은 완전 부실 상태로 이자나 원금을 제때 갚지 못했을 때 부여된다.
나신평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메리츠증권이 홈플러스에 내준 대출잔액이 전액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될 경우, 고정이하여신은 1조3000억원, 요주의이하여신은 1조8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주요 증권사 7곳의 고정이하여신 평균치(4209억원)을 세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이는 자기자본 대비로도 과도하다는 평가다. 나신평이 추산한 규모를 적용하면 자기자본 대비 순요주의이하자산 비율(요주의이하자산-대손충당금)은 19.9%로 작년 말보다 8.3%포인트 올라가게 된다. 고정이하자산비율도 7.1%로 석 달 만에 3.7%포인트 오를 전망이다.
이는 실적에도 부담을 준다. 부실여신에 대해 충당금 및 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쌓아야 해서다. 고정분류 대출 적립률은 20%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고정이하여신이 늘어나긴 했으나 제한적인 수준이고 이에 대비해 최근 신종자본증권 공모채를 발행했다”며 “순자본비율(NCR)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침체로 회수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문제는 담보권 행사 과정에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 등 메리츠금융그룹은 홈플러스 대출에 대해 홈플러스 62개 점포(가치 4조8000억원)를 담보로 한 신탁 1종 수익권을 보유 중이다. 신탁 담보권을 통해 회생절차와 무관하게 담보 부동산 자산을 독립적으로 처분할 수 있으나 부동산 시장 불황 속에서 적정 가격에 빠르게 처분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담보물이 상업 부동산이라서 매각도 쉽지 않다는 진단이 나온다. 도심 외곽 큰 규모로 지어진 상업 부동산은 가격이 비싸고 재개발 또는 운용변경이 까다로워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 오프라인 유통업 시장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금리도 여전히 높아 투자 매력은 높지 않다.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1월 상업업무용 빌딩 거래금액은 1조6497억원으로 전월 3조3431억원 대비 50.7% 감소했다. 거래량도 1130건에서 854건에서 24.4% 쪼그라들었다. 2023년 1월 이후 최저치다.
물론 시장에서는 담보 처분권 행사를 통해 메리츠증권이 대출 원금을 회수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부동산 불황에 따른 매각 지연 등 불확실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윤소정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담보 가치 대비해서 LTV(담보인정비율)가 25%로 낮긴 한데 매각 절차에 들어갈 때 부동산 경기가 지금 수준이라면 일시에 매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며 “단계적으로 좋은 점포 위주로 처분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재성 나신평 수석연구원도 “2027년 만기 전까지 회수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100% 회수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빠른 시일 내 매각이 어려워질 수 있는 정성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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