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로 뒤숭숭했던 지난 3일, 키움증권 고객들은 아찔한 경험을 했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홈트레이딩시스템(HTS) 오류가 1시간 가량 이어지면서 주식 매수·매도 주문 체결이 지연됐다. 이튿날 오전 대통령 탄핵 선고 발표를 앞두고도 전산이 1시간 30분 또 멈춰섰다. 개인 투자자 거래 1위 증권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키움증권의 전산 장애는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키움증권은 대형 증권사 중 가장 많은 전산에러로 악명이 높다. 그렇다고 IT 설비 투자에 인색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심지어 키움증권의 모회사는 IT기업인 다우기술이다. 키움증권은 다우기술에 매년 수백억원의 전산시스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에 적지 않은 돈을 모기업에 내고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최근 7년간(2018~2024년) 다우기술에 총 4752억원의 비용을 지급했다. 다우기술은 키움증권의 모회사로 MTS, HTS 등 전산시스템 설계와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키움증권의 다우기술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지난해 전산운용비로 1097억원을 썼는데 그해 다우기술에 지급한 규모만 817억원(비중 74.5%)이었다. 7년 전체를 놓고 보면 전산운용비 5434억원 중 87.5%(4752억원)가 다우기술 지출에 쓰였다.
이는 경쟁 증권사와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같은 기간 계열사 삼성SDS와 전산시스템을 거래하는 삼성증권의 전산운용비는 5857억원으로 이중 삼성SDS에 지급한 금액은 3504억원으로 59.8% 수준이다.
문제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 제대로 된 전산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 대형 증권사 10곳에서 발생한 프로그램 오류 등 MTS·HTS 전산 장애 건수는 총 228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키움증권이 42건(18.4%)으로 가장 많았다. 전산 장애 배상도 34건으로 전체(164건) 20.7%를 차지하며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는 다우기술의 IT 역량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키움증권이 다우기술와 함께 개발한 자동주문전송(SOR) 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돼서다. 다른 대부분의 증권사는 한국거래소 계열의 코스콤이나 이번에 출범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SOR을 사용하는 반면, 키움증권의 SOR 시스템은 다우기술이 맡고 있다.
SOR이란 자동화된 주문 처리 프로세스로 투자자의 주문을 보다 유리한 시장에 전송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전산 장애 발생 당시 자동주문 분할 처리나 체결 정보 수신에서 SOR이 비정상적으로 작동, 체결 지연이나 주문 누락, 시스템 먹통 등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다우기술의 매출 증대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우기술은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전 회장의 장남인 김동준 키움프라이빗에쿼티(PE)대표부터 ‘이머니-다우데이타-다우기술-키움증권’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중간 계열사다.
지난해 다우기술의 매출액 3173억원 중 키움증권에서 받은 전산시스템 관련 비용(817억원)이 25.8%를 차지했다. 키움증권 없이는 다우기술 영업이 제대로 굴러가기 힘든 구조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실관계 등을 확인해 검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조치 및 보상 내역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고 SOR이 사고와 관련 있는지도 확인 사항이다”며 “내부적으로 검토를 거쳐 필요하면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움증권 측은 전산 장애 사태와 다우기술 기술적 역량 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SOR 문제라기보다는 서버의 병목 현상 때문에 (전산 장애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SOR이 문제였다면 시작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전산 장애 건수가 많은 부분에 대해서는 “고객 수가 많고 점유율이 높아 전산 장애도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