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부터 예금 보호 한도가 5000만원으로 오른다. 2001년 5000만원으로 올린 뒤 24년 만이다. 당시 국내 1인당 국민소득은 9460달러로 지난해 3만6000달러의 4분의 1수준이었다. 금융‧자본시장이 성장한만큼, 최소한의 금융소비자 안전 조치도 강화하는게 맞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조치로 금융소비자들은 한시름 덜게 됐지만 금융사들은 업권이나 규모에 따라 입장차가 갈린다. 예금보험기금에 납부해야 하는 보험료가 증가하는 등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뉴스1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뉴스1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예금자보호 한도가 오는 9월부터 1억원까지 가능하다. 은행과 저축은행뿐 아니라 개별 중앙회가 자체적으로 보호하는 농협·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회사의 한도 역시 1억원으로 오른다. 이들이 파산할 시 고객이 맡긴 돈 1억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예금을 쪼개어 보관한 금융소비자 입장선 반가운 소식이다. ‘1억원까지 보호’라는 ‘심리적 안전판’을 얻게 돼서다. 중장년층 고액 예금자의 경우, 지금까지는 한도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 불안감을 안고 자산을 분산 예치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금융사에 맡겨진 예금은 약 3000조원이다. 이 가운데 약 49%인 1473조원이 보호 한도인 5000만원 이하 예금이다. 9월에 한도가 1억원까지 오르면 보호 대상 상품 규모는 1714조원까지 확대된다. 241조원 가량의 예금이 보호 울타리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대규모 자금 이동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금융사들은 한도 상향으로 촉발되는 자금 이동을 통해 수신고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내에서도 대형은행과 중소형 은행과의 입장이 미묘히 갈리고 저축은행 등 상호 금융 입장도 차이를 보인다.

시중은행의 경우 이미 ‘안전한 자산 보호처’로 인식된 상황이라 신뢰와 안전성 측면에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자 보호 측면에서 한도 상향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예금금리 인하기에 은행과 저축은행 등의 수신 금리가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지방은행의 경우엔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액 예금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영업을 확대할 수도 있어서다.

저축은행 등 상호금융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금융위원회와 예보가 지난 2022년 실시한 연구 용역 결과, 보호 한도가 1억원으로 올라가면 저축은행 예금이 16~25%가량 증가할 것으로 봤다. 한국금융학회에서는 최대 40%까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보호 한도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과 규제 부담은 공통된 고민이다. 가계대출 규제로 영업이 자유롭지 않은데, 수신을 늘려봐야 딱히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시중은행보다 자금 활용 유인이 크지 않은 인터넷은행의 경우,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축은행도 타업권 대비 예보료율이 높은 상황이라 보호한도 상향에 따른 보험료율 인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보는 현재 금융사들이 외환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등 과거 부실을 해소에 들어간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현재 요율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예보 측은 오는 9월 제도 시행 뒤 관련 용역을 진행해 적정 수준의 요율을 산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8년 납입 예보료 분부터 새로운 요율을 적용한다.

박상연 자본시장연구원은 “자본시장 성장, 디지털금융 발전, 금융상품의 복잡성 증가에 따라 예금보호대상 범위 확대 필요성도 제기돼 왔다”며 “주요국이 금융업권별 예금보호한도를 차등적용하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예금자, 보험계약자, 금융투자자 각각의 특성에 맞게 예금보호제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