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360조원을 들여 첨단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삼성전자가 야권과 환경단체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기존 계획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대신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해야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삼성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둔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언급하며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인프라 구축을 강조해서다. 업계에선 정치권의 소모적 논쟁과 환경단체의 반발이 지속될 수록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삼성전자의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환경단체 소송·대선후보 눈치에 삼성 반도체 투자 계획 차질 우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삼성전자는 당초 계획보다 3년 반쯤 앞당긴 2026년 12월쯤 용인 클러스터의 첫 삽을 뜨고 2030년 조기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 초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동서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이 각각 1GW 규모의 LNG 발전소를 건설해 약 3기가와트(GW)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해당 계획은 시작부터 암초를 만났다. 경기환경운동연합과 기후솔루션은 3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 계획의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LNG 연소 과정에서 배출된 대기오염 물질이 주민의 건강권을 해친다는 이유다. 기후솔루션은 또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조달할 경우, LNG 발전 조달보다 최대 30조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의 기존 전력 공급 계획 재검토를 요구했다.
지지율 1위 대선후보가 재생에너지 정책을 연일 강조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재명 후보는 4월 28일 첫 공약으로 “반도체 RE100 인프라를 구축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신속하게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고동진 “입지 확보도 비용도 비현실적…기업 못 받아들일 것”
업계 일각에서는 환경단체의 주장과 달리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로 용인 클러스터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입지 확보 면에서도 효용이 낮다는 주장이 나온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위한 보완 설비도 추가 구축해야 하는데 비용은 물론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IT조선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에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용인 클러스터에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900만평의 부지가 필요하다는데, 그 면적이 은평구 규모다. 말이 안 된다”고 역설했다.
고 의원은 또 재생에너지의 최대 약점인 간헐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생산은 안정적 전력 공급이 중요한데 태양광과 풍력에너지는 간헐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어렵고, ESS 추가 구축 비용도 만만찮다”며 “(어떤 세력이) 이를 밀어붙이더라도 기업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 베트남서 탈탄소화 정책 발맞춰 태양광 구축 본격화
2022년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RE100 달성을 선언했다. 다만 현재까지는 글로벌 사업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2027년까지 해외 사업장과 DX부문 전체 사업장을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베트남 호찌민과 박닌 공장에 각각 대규모 태양광 설비 구축에 돌입했다. 이를 시작으로 베트남 내 모든 공장에 태양광 설비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미 완성된 공장에 태양광 에너지 공급 인프라를 늘린다는 점이 아직 첫삽도 뜨지 못한 용인 클러스터와의 차이다.
베트남 정부의 탈탄소화 정책에 외국기업인 삼성전자가 발 맞추기 위한 노력도 있다. 베트남 정부는 앞서 2024년 7월 기업이 민간 발전사로부터 재생에너지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DPPA(기업 간 재생에너지 직접구매계약)에 관한 시행령을 발행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용인 클러스터의 재생에너지 활용 방안과 관련해 “현재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이광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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