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말레이시아 등 카카오톡 이용자가 많은 동남아에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선보이겠다”
카카오뱅크가 출범하기도 전인 2015년, 당시 국내 첫 디지털 은행을 표방하며 사업을 준비하던 윤호영 대표가 사업계획 브리핑에서 밝힌 포부다. 아직 국내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에 글로벌 진출을 선언하고 나선 것. 그리고 10년 만에 그는 그의 다짐을 현실화했다.
27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지난 19일 태국 정부로부터 ‘가상은행’ 인가를 받는데 성공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시중은행이 모두 철수한 지 28년 만에 국내은행으로는 첫 사례다.
태국 금융당국의 기대도 크다. 태국 중앙은행이 지난 2023년 1월 발간한 가상은행 인가 지침서를 보면 “(카카오뱅크는)빠르고 매끄러운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고, 예치 기간이 길수록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주단위 적금을 제공하고 있다”고 호평한 바 있다.
윤 대표는 카카오뱅크로 갈고 닦은 비대면 기술 경험을 기반 삼아 동남아시아 진출을 모색해 왔다. 그러다 지난 2023년 태국 금융지주사인 SCBX가 가상은행 설립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하면서 글로벌 진출 급물살을 탔다. 윤 대표는 '태국 가상은행 인가 획득'을 위한 업무협약(MOU)에서 “SCBX와 함께 태국 현지 금융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금융의 미래를 만들어나가겠다”며 신뢰를 얻었다.
인가라는 고비를 넘긴 카카오뱅크는 오는 3분기 가상은행 출범을 위한 준비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 영업을 시작한다. 카카오뱅크는 가상은행 설립에 있어 서비스뿐 아니라 모바일 앱 개발 등을 주도하는 등 인터넷전문은행 노하우를 태국에 이식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재 추가로 채용에 들어갔다. 글로벌 백엔드 개발자, 글로벌 모바일 개발자, 글로벌 사업 기획/운영 담당자 등을 채용할 계획이다.
앞서 인도네시아 슈퍼뱅크 지분 투자(10%)를 통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도 협업 기회를 발굴하고 있는 상황. 태국 가상은행의 성과까지 더해져 장기적인 글로벌 진출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 진출도 계획한다. 국가와 진출 방식 등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국가 진출도 지속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5연임에 성공한 윤 대표는 글로벌과 함께 ‘AI’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국내 시장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장과 기술을 앞세워 성장을 지속하겠다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지난 4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핀테크 중심 금융 컨퍼런스인 ‘머니 2020 아시아’에 기조연설을 맡아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에는 산업 생태계가 AI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카카오뱅크는 AI 기반의 사용자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 변화에 ‘올인’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표는 금융혁신의 상징인 인터넷전문은행 업계에서는 이미 ‘큰 형님’ 으로 통한다. 출범 2년만에 흑자전환을 달성했고 지난 2021년엔 기업공개(IPO)도 성공했다. 카카오뱅크의 성공은 윤 대표의 디지털 전환과 모바일·비대면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윤 대표는 2003년 보험 설계사나 대리점 없이 온라인으로 직접 보험을 판매하는 다이렉트 보험사 ‘에르고다음 다이렉트’ 설립에 참여해 디지털 금융의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지난 2014년 카카오 모바일뱅크TFT 부사장을 지내며 금융과 디지털 기술 융합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5년 카카오뱅크 컨소시엄을 거쳐 2016년부터 대표를 기점으로 지난 9년간 카카오뱅크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비대면 금융시대, 기술 중심의 은행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실현하면서 금융시장을 비대면·모바일 중심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윤 대표는 “카카오뱅크의 성장 배경에는 기술을 통해 편리함을 극대화하고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한다는 고객 중심적 사고가 있었다”며 “은행이 아닌 고객이 선택권과 주도권을 갖는 디지털 전환에 부합하는 소비자 중심의 플랫폼으로 거듭나 은행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에 그치지 않고 AI 기술 기반의 ‘AI Native Bank’로 변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023년 10월 금융권 최초로 AI경영시스템 국제표준안 인증을 획득했고 지난해 AI 거버넌스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2월에는 AI 전용 R&D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해당 AI 데이터센터는 카카오뱅크가 선보이는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고 있다.
올해 금융분야 AI 가이드라인 개정 및 AI 기본법 시행 대응, AI 거버넌스 대상 범위 확대, AI 윤리 관련 조직 추가 신설 검토, AI 생애 주기별 준수 절차 개선 등을 포함하는 ‘AI 거버넌스 2.0’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최근 선보인 AI검색의 경우 서비스 시작 2주만에 13만명이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출시한 AI계산기 역시 고객의 편의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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