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인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의 기업공개(IPO)를 잠정 중단하고 지분 30%를 다시 사들이며 100% 자회사로 편입한 것이 신호탄이 됐다.

서울 종로구 SK 본사. / 뉴스1
서울 종로구 SK 본사. / 뉴스1

합병설의 핵심은 SK온의 재무구조 개선과 상장 우회 전략이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수주 확대와 공장 증설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누적 적자와 21조원에 달하는 순차입금으로 재무 부담이 큰 상황이다.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251%다. LG에너지솔루션(99.2%), 삼성SDI(89.0%)보다 훨씬 높다.

SK엔무브는 윤활유 사업을 기반으로 최근 3년간 평균 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린 ‘캐시카우’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를 합병하면 SK엔무브의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활용해 SK온의 손실을 보완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SK엔무브의 현금창출력을 활용해 SK온의 재무를 안정화하려는 전략이다”라며 “단기 자금 수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익성과 현금흐름을 함께 보완하려는 움직임이다”라고 분석했다.

SK그룹 차원의 사업 구조 재편 흐름과도 맞물린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SK그룹은 유사 사업은 묶고, 연관성 낮은 자산은 정리해 규모의 경제를 노리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FI의 반발과 SK엔무브의 가치 희석은 합병 추진 과정에서 주요 변수다. SK온에는 여전히 FI들이 약 13%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상장을 전제로 투자에 참여했다. 합병이 상장 일정과 충돌할 경우, FI 측 반발이 불가피하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이와 유사한 사례를 경험했다. 지난 6월 SK엔무브의 상장 계획을 철회하며, FI인 IMM크레딧솔루션이 보유한 지분 30%를 약 8600억원에 인수했다. 업계는 이를 합병을 염두에 둔 선제 조치로 보고 있다. 합병 비율 산정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매입이란 해석이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FI가 합병에 반대할 경우, 주주 간 약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지분을 사들여야 할 수 있다”며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조건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SK엔무브 가치가 SK온과의 합병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우량 자회사가 재무구조가 취약한 계열사에 흡수될 경우, 기존 주주의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일선 소장은 “SK이노베이션은 재무 부담을 줄이고 사업 시너지를 노려 합병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FI 지분 처리, 엔무브 가치 하락 논란, 주주 보호 문제 등 다양한 변수를 신중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이선율 기자
melod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