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자동차를 포함한 상호 관세율을 15%로 인하하는 데 합의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인 자동차 부품 업계는 여전히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15%의 관세율조차 감당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각)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함에 따라 양국이 상호 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도 31일 브리핑을 통해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할 예정이던 25%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양국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는 ‘관세 폭탄’을 피하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부품 업계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 영세한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부품업체들은 15%의 관세도 과중한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한미 FTA에 따라 원래 무관세 품목이었던 자동차 부품에 오히려 1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업계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15%로 관세율이 낮아졌다지만 완성차 제조사가 이를 전액 부담하진 않을 것”이라며 “국내 부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3%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관세의 절반만 떠안아도 적자 전환은 불가피하고 줄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부품업계의 어려움은 현대차·기아의 부품 현지화 전략으로 더 커지고 있다. 양사는 최근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부품의 현지 조달 확대 방침을 밝혔다. 미국 현지 생산 부품 비중을 늘려 관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부품 조달률은 48.6%로 주요 경쟁사인 테슬라(68.9%), 혼다(62.3%), 도요타(53.7%)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단기적으로 부품 소싱 다변화를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전사 차원의 협업을 통해 전략적 현지화를 확대할 것”이라며 “현재 200여개 부품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의 이 같은 움직임이 사실상 국내 부품업계를 압박하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국내 부품업계는 매출 대부분을 현대차·기아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지난 2024년 기준 국내 부품업체의 완성차 납품액 71조6584억원 가운데 현대차(37조4797억원)와 기아(27조2524억원)로부터 발생한 매출이 90.3%를 차지했다.
이 같은 구조는 지역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부품업체가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관세 대응 여력도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지역경제 보고서에서 수도권, 대경권, 호남권, 동남권, 충남권 등 전국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인천의 대미 자동차 수출 비중은 전체 자동차 수출의 57%를 차지하고 신차 기준으로는 90%에 육박해 피해 규모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충남권과 동남권의 대미 수출 비중도 각각 31%, 35%로 나타났다.
이호근 교수는 “국내 부품업체 매출의 90% 이상이 현대차·기아에 쏠린 구조적 문제로 인해 경영 위기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지 조달 비중이 늘어나면 매출 감소는 물론 기존 수출량을 유지하더라도 관세 부담이 늘어 결국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부품업계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부품업체들의 도산은 곧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세제 감면, 기술 개발, 수출 지원 등 중소기업 대상 지원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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