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간 한국은행이 ‘오지랖’을 부린다는 지적에 반박한 것인데,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금리 정책도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고 했다. 통화정책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구조개혁을 내세운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0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이후 집값 안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0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이후 집값 안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한국은행 

6일 한국은행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소속 황인도 실장과 황설웅 과장이 작성한 ‘왜 중앙은행이 구조개혁을 이야기할까?’ 보고서를 블로그에 게재했다. 보고서의 골자는 구조개혁이 성장률을 높이는 수단일 뿐 아니라, 금리 정책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은 경제의 기초 체력을 약화하고,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유 공간마저 좁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최근 한국 경제의 큰 고민은 장기적인 저성장이다. 단기적인 경기 침체는 금리 인하 같은 처방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구조적인 성장 둔화는 다르다. 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고 2024년부터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10년대 초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해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대거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던 사례는 구조개혁이 없는 통화정책만의 한계를 보여준다.

통계청과 UN 자료에 따르면, 2070년이면 한국의 고령 인구 비중은 46.6%로, 일본(36.8%)이나 OECD 평균(31.0%)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이런 구조적 변화는 통화정책을 무력화한다. 고령화는 균형 실질금리를 끌어내려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 6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초고령화에 따른 통화정책 여건 변화와 시사점’을 통해, 저출생·고령화가 지난해 실질금리를 1.4%포인트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황 실장은 “초고령사회는 경제 성장 동력 약화로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가계는 노후 대비를 위한 저축을 많이 하게 돼 금리가 낮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환경에서는 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이가 줄고 대출 수요가 감소해 금융기관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며,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고 했다.

향후 생산성 제고나 출산율 반등 같은 구조개혁이 없다면 한국은행이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금리 인하로 대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금리를 올릴 때도 상황은 복잡하다. 고령화로 인해 연금·건강보험 같은 경직성 지출은 늘고, 정부 재정은 악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이자 부담까지 커져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실제로 국회예산정책처는 출산율이 현 수준(0.75명)을 유지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년 뒤에는 173%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결국 해법은 구조개혁에 있다고 봤다. 황 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출산율 회복, 고령자 고용 확대, 생산성 향상 같은 변화가 이뤄져야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도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