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혁신성에는 공감하나 제도 도입 시 외환 규제 우회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대기업의 사업 진출에 따른 금산분리 원칙 및 은행 자금 중개 기능 위축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병목(사진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윤승준 기자
이병목(사진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윤승준 기자

이병목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가치 안정적인 지급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가져올 수 있는 거시 경제와 통화정책 부분 문제점에 대해 충분한 안전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환 규제 우회적인 문제를 들었다. 전면적인 외환 자율화를 허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면 블록체인 기술 특성상 국경 구분 없이 이전이 가능해 과세 회피 목적으로 외환 규제를 우회하는 국가 간 자금 이동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국장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개인 지갑으로 이전한 다음부터는 추적 자체가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외환 거래 시 신고를 의무화하는 외국환 은행 중심의 외환 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고 한은이 운영하는 외환 전산망을 통해 외환 유출 모니터링을 가동 중인데 블록체인을 통한 스테이블코인 이전은 현행 규제 틀 바깥에 존재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스테이블코인 진출로 금산분리 원칙이 깨질 수 있다는 점도 들었다. 스테이블코인은 일종의 수신 전문 금융업과 같아 비은행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할 시 은행의 예금 기반을 약화해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이 국장은 “플랫폼을 보유한 대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대기업이라는 신뢰로 인해 소비자들이 수용할 가능성이 커 대기업이 스테이블코인 네트워크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에서 통과한 지니어스(GENIUS Act)법에도 비은행 상장 대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대기업이 민간 코인을 발행할 경우 경제에 미칠 파급력과 그에 따른 은행 시스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에 미치는 점도 들었다.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용재로 쓰일 수 있음에도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위치해 발행 시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이 국장은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같은 경우 금융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급 결제와 관련해선 지금 한은을 정점으로 금융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기존 지급 결제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고 외부 충격이라든지 IT 리스크 등으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엔 지급 결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 훼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테이블코인의 혁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한 조건부 결제, 특화된 지급 서비스를 구현 등 디지털자산 기반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 국장은 “한은은 국내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을 지원함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며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서 기관용 CBDC를 기반으로 하는 예금토큰 테스트를 완료했었는데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병행해서 향후 프로젝트 한강의 후속 테스트도 금융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상용화하는 방향을 검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 시작 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류혁선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윤승준 기자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 시작 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류혁선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윤승준 기자

한편 이날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의 경제학 : 경제 파급효과와 정책적 함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에 대해 과도한 경쟁 및 승자 독식 등을 고려해 자본금이 아닌 자본비율로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레버리지 예대마진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은행과 비슷한 규제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다.

최 교수는 “주조차익, 국가의 법정화폐의 독점성에 근거해서 은행에 예대마진을 주면서 은행이 공공성을 띠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 도입으로) 주조차익을 사유화하게 될 때 (코인 발행사에) 공공성을 기대해야 하는지 토의가 필요하다”며 “코인의 발행량과 채권 보유량 등을 한은이 알아야 하므로 금융안정성을 위해 한은과의 공조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두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시 국내 이용자 보호, 동일기능-동일규제, 글로벌 스탠다드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연구위원은 “불투명한 발행과 준비자산 관리 현황은 경미한 충격에도 인출 사태로 이어질 수 있어 가치안정성 유지에 대한 책임 확보와 상환 가능성 보장이 필요하다”면서 “일반 가상자산과 차별화되는 ‘통화준거형 디지털자산’을 별도로 정의하고 발행인 적격, 발행 요건, 가치안정성, 환급가능성, 외국환거래 모니터링 등을 고려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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