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역사에서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는 한 때 대체 불가능한 저장 장치로 꼽혔지만 지금은 입지가 제법 달라졌다. 하드 디스크에 사용되는 자기기록 기술은 분명 수십 년간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지금은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SSD(Solid State Drive)에 성능은 물론 용량까지 따라 잡힌 상태다. 데이터센터에서도 1만rpm 이상 제품은 사라졌고, 기업용 SSD는 드라이브당 256테라바이트(TB)까지 출시됐다.
그럼에도 하드 디스크는 비용 대비 대용량, 검증된 신뢰성 덕분에 개인용 PC나 네트워크 연결 스토리지(NAS)에서 여전히 쓰인다. 특히 대규모 저장 공간이 필요하면서도 적정 성능과 낮은 비용을 원하는 환경에서 경쟁력이 있다. 십수년간 정체를 넘어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던 하드 디스크 시장에서 제조사들은 고용량 제품 개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씨게이트의 ‘아이언울프 프로 30TB’ 모델은 하드 디스크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모델로도 주목할 만 하다. 이 제품은 씨게이트의 ‘모자이크 3+’ 플랫폼을 기반으로 열보조자기기록(HAMR) 기술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첫 세대 제품이다. 기술적인 변화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플래터당 3TB, 드라이브 당 30TB 용량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고, 하드 디스크를 넘어 스토리지 솔루션 전체를 봤을 때도 비용 최적화의 여지를 제공한다.
플래터당 3TB 달성한 열보조자기기록 탑재 첫 세대
씨게이트 ‘아이언울프 프로 30TB’ 모델은 기업용 NAS 등을 위한 고급형 제품으로, 기술적 측면에서는 기업용 하드 디스크의 기술이 그대로 적용된 모습이다. HAMR 방식을 사용한 ‘모자이크 3+’ 플랫폼 기반에서 플래터당 3TB 용량을 구현했고, 제품 수준에서는 이 플래터를 10장 탑재해 30TB 용량을 만들었다. 3.5인치급 폼팩터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 플래터 10장을 넣기 위해 제품 안에는 헬륨을 채워 플래터 회전 시 나타날 유체 저항을 최소화하고 플래터간 거리를 좁혔다.
회전수는 3.5인치 하드 디스크의 현실적 표준이 된 ‘7200rpm’이고, 인터페이스는 범용성이 높은 표준 ‘SATA 6Gbps’를 사용했다. 제품 사양에서 제시되는 순차 전송 속도는 275MB/s 정도로, 인터페이스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다. 기록 방식은 전통적인 CMR을 사용해, NAS 등 읽기와 쓰기 작업이 섞인 복잡한 작업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일반적인 PC용 하드 디스크 모델과 달리 드라이브 베이 지원 ‘무제한’으로 대규모 RAID 구성에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점이 차별점이다.
제품의 신뢰성은 ‘기업용’ 수준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하드 디스크의 신뢰성 지표로 사용하는 ‘MTBF(평균 고장시간 간격: Mean Time Between Failure)’는 250만시간이고, 연간 작업 부하량도 550TB급에 이른다. 보증도 5년 제한 보증에 데이터 복구 지원 서비스 3년이 포함됐다. 또한 ‘IHM(IronWolf Health Management)’ 기능은 주요 NAS 시스템과 함께 사용할 때 제품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치명적인 장애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게 알려준다.
씨게이트의 아이언울프 프로 30TB 제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최대 용량’과 이를 달성한 ‘방법’이다. 이 제품은 기존의 최대 용량을 넘어선 30테라바이트(TB) 용량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 대용량 하드 디스크를 구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열보조자기기록(HAMR: Heat-Assisted Magnetic Recording) 방식을 사용한 첫 세대 제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품에 사용된 씨게이트의 ‘모자이크 3+’ 플랫폼은 데이터 기록 밀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미디어와 열보조자기기록(HAMR) 기록 방식과 고정밀 읽기 장치, 새로운 통합 컨트롤러가 결합돼, CMR(Conventional Magnetic Recording)방식 기록 기준 플래터당 3TB의 기록 용량을 달성했다. 이 플랫폼의 중요한 특징은 HAMR 기록 방식의 채택으로, 기존의 ‘자기 기록’ 이상 밀도를 달성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위치에 미디어 입자의 상변화가 쉽도록 레이저로 열을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씨게이트의 ‘모자이크 3+’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하드 디스크 제품은 엔터프라이즈 환경을 위한 ‘엑소스(Exos) M’과 소규모 기업이나 개인의 NAS, 저장장치 등을 위한 ‘아이언울프 프로(Ironwolf Pro)’ 제품이 있다. 현재 아이언울프 프로는 최대 30TB, 엑소스 M의 경우 최대 36TB 용량까지 제공된다. 엑소스 M의 경우 32TB, 36TB 제품은 CMR 방식 기록보다 밀도를 더 높이기 위한 SMR(Shingled Magnetic Recording) 기록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씨게이트 ‘모자이크 3+’ 플랫폼이 사용하는 HAMR 기록 방식은 미디어와 헤드 양 쪽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 측면에서는 더 작은 공간에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기록해야 하고, 물리적으로 더 작은 공간에서도 명확한 데이터 특성 보전을 위해서는 자기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합금 구조가 필요해졌다. 씨게이트는 철-백금을 활용한 초격자 백금-합금 미디어를 사용해, 디스크 미디어에 기록된 데이터가 외부 자기장과 전기장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크게 높였다.
이렇게 미디어의 데이터 보존력을 높이면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도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씨게이트는 기존의 자기기록 방식으로는 현재의 미디어 밀도에서 정확한 위치에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출력을 얻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HAMR 방식은 데이터를 기록할 때 기록할 위치에 레이저로 열을 가해, 상변화에 필요한 자기 에너지 수준을 순간적으로 낮춘다. 이후 자기 헤드로 상변화를 유도하고 빠르게 식히면 기록한 데이터가 남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나노 수준의 레이저와 포토닉 퍼널, 양자 안테나 등이 함께 사용됐다.
읽기에는 고밀도 자기 미디어에서 효과적으로 읽기가 가능한 ‘7세대 스핀트로닉 리더’가 사용됐다. 씨게이트는 이 7세대 스핀트로닉 리더에 세계에서 가장 작고 민감한 자기장 판독 센서 중 하나가 포함돼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러한 정밀 기술들이 정확히 움직이기 위한 제어 기술에는 새로운 자체 통합 컨트롤러가 활용됐다. 이 컨트롤러는 이전 세대 대비 공정은 28nm에서 12nm로 미세화됐고, 제어와 처리 성능도 최대 3배까지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밀도 플래터로 인상적 용량과 준수한 성능 달성
씨게이트의 ‘아이언울프 프로 30TB’ 모델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여러 모로 새로운 기술들이 쓰였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표준 SATA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주요 NAS 모델이나 PC, 워크스테이션 등에 장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10년 이상 된 PC의 파워 서플라이에는 전원 핀 호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는 것이 좋겠고, NAS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제품별 호환성 리스트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이번 테스트 환경에는 씨게이트 아이언울프 프로 30TB 모델과 큐냅(QNAP)의 TS-673A 모델을 사용했다. TS-673A 모델은 AMD 라이젠 V1500B 쿼드 코어 프로세서와 8GB 메모리, 2.5Gbps 이더넷 포트 두 개를 갖췄고 3.5인치 하드 디스크 6개와 M.2 SSD 두 개를 장착할 수 있다. NAS에 하드 디스크를 설치하는 것은 트레이에 하드 디스크를 장착하고 밀어넣는 것으로 끝났고, 이후 전원을 켜고 새로 장착된 하드 디스크 위에 공유 폴더나 저장 공간을 설정하면 된다. 이 모델에서는 드라이브 별로 ‘IHM’ 관리도 사용할 수 있다.
테스트 환경은 에이수스 RT-BE92U 공유기의 2.5Gbps 이더넷을 기반으로 했고, NAS의 2.5Gbps 이더넷 포트 두 개는 ‘포트 트렁킹(Port Trunking)’ 구성했다. 테스트용 PC는 10Gbps 이더넷과 기가비트 이더넷을 사용한 시스템 등 두 대를 사용했고, 테스트 환경의 어레이 연결은 iSCSI를 사용했다. 테스트 환경의 어레이 구성은 하드 디스크 두 개의 ‘RAID 1’ 구성이다. 하드 디스크를 직접 연결한 테스트 시스템은 인텔 코어 울트라 285K와 64GB 메모리, 에이수스 ROG 스트릭스 Z890-E 메인보드를 사용했다.
스토리지의 기본 전송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크리스탈디스크마크(CrystalDiskMark)’ 테스트에서는 제품 한 개를 PC에 SATA 인터페이스로 직접 연결했을 때와, 제품 두 개를 RAID 1 구성한 큐냅 TS-673A에 iSCSI로 연결한 경우를 테스트했다. 이 중 PC에 연결했을 때의 개별 제품 성능은 대략 순차 읽기, 쓰기 모두 290MB/s 가까운 좋은 성능을 보였다. 이는 이전 세대 제품들보다도 대략 10~20MB/s 정도 성능이 오른 것이고, 일반적인 PC용 5400rpm 드라이브보다는 대략 50% 정도까지도 성능이 높다.
NAS에 iSCSI로 연결했을 때도 순차 전송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이지만 성능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RAID 1을 사용한 NAS에서는 읽기 워크로드에서 완전히 동일한 내용인 두 개의 드라이브를 모두 활용해 두 배의 성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읽기 성능은 포트 트렁킹 구성을 이용했더라도 2.5Gbps 이더넷 포트 한 개의 대역폭에 제한을 받는다. 한편 무작위 처리 성능은 읽기, 쓰기 모두 NAS 쪽이 더 높은데, 이는 NAS 내부에서의 메모리 캐시 구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IO미터(IOMeter)의 순차전송 테스트에서 씨게이트의 아이언울프 프로 30TB 하드 디스크는 대략 읽기는 290MB./s 이상, 쓰기는 PC 직결에서는 273MB/s, NAS에서는 296MB/s 정도를 기록했다. NAS에서의 성능은 캐시 처리에서 약간 도움을 받고, 2.5Gbps 네트워크 연결에 제약이 걸린 모습이다.
무작위 전송에서는 읽기에서는 RAID 1의 하드 디스크 두 개를 사용하는 점에서 이득을 보고, 쓰기에서는 두 개 하드 디스크에 동시 기록에 따른 손해를 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하드 디스크들이 보였던 특성과 달리 이 ‘아이언울프 프로 30TB’ 모델은 무작위 읽기 성능이 쓰기보다 두 배 가량 더 잘 나오는 모습이다. 이제 하드 디스크에서 무작위 읽기, 쓰기 성능에 대한 기대는 많이 줄어든 상태지만, 복잡한 자료를 다룰 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특성이다.
PC 두 대를 사용한 IO미터 테스트에서는 테스트 환경에서의 하드 디스크와 네트워크 대역폭, NAS의 성능 특성에 따른 영향을 좀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먼저, PC 두 대에서의 순차 읽기에서는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두 개와 하드 디스크 두 개 구성을 모두 사용해 2.5Gbps를 넘어서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순차 쓰기에서는 두 대를 합쳐 260MB/s 대의 처리 성능을 보였다. 이는 현재 ‘아이언울프 프로 30TB’ 하드 디스크를 쓸 때 소규모 구성에서는 드라이브 당 2.5Gbps 정도면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PC 두 대의 무작위 읽기, 쓰기 워크로드에서는 두 대에서 들어오는 워크로드의 대기열에 따라 다소 극단적인 분배가 나왔지만, 총 성능은 이전에 살펴본 수준과도 비슷하다. 무작위 처리 성능은 이 테스트의 결과가 드라이브 두 개 구성에서의 한계점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혼합 워크로드의 결과에서는 작업 부하가 드라이브 두 대로 분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
빠르게 용량과 성능을 높여 가는 SSD의 시대 속에서도 하드 디스크는 여전히 비용 대비 용량이라는 강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씨게이트 아이언울프 프로 30TB 제품의 공식 가격은 124만9000원으로 만만치 않지만, 비슷한 용량을 SSD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30TB 용량의 등장은 인터페이스당 가치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있겠다. 2베이 NAS에서도 RAID 1으로 30TB, 4베이 NAS에서 RAID 5로 90TB 용량을 사용할 수 있는 점은 NAS 비용을 줄이는 데서 높은 가격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제품이 잘 어울리는 사용처는 역시 중소규모 조직을 위한 NAS다. 중소규모 조직을 위한 NAS에서 이 제품은 고용량을 위해 고가의 8베이급 이상 NAS나 전문 스토리지를 구입할 상황을 4베이급의 NAS로 줄일 수도 있게 해 준다. 이전 모델들 대비 용량당 비용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해도, 솔루션 차원에서 바라보면 장점이다. 반면 개인 PC나 워크스테이션에서는 데이터 저장용으로는 조금 과할수도 있다. 단일 드라이브에서 디스크 문제로 인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보다는 별도 NAS에서 RAID 구성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한편, 씨게이트의 ‘모자이크 3+’ 플랫폼 기반의 이 ‘아이언울프 프로’ 제품이 등장함으로써 꽤 오랫동안 정체 상태였던 하드 디스크의 고용량화 추세도 다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쓰이던 자기기록 방식에 ‘열 보조’가 본격 도입되면서 변화의 계기도 만들어졌고, 씨게이트는 향후 이 기술을 기반으로 플래터당 10TB 용량을 구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아직 자기기록 방식 하드 디스크의 한계를 선언하기에는 조금 성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