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아침, 금융권 공동 채용 박람회장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뜨거운 것은 좁은 취업문을 뚫고자 하는 구직자들의 열정이었다. 단정한 정장을 입은 이들은 손에 쥔 면접 자료를 놓칠세라 반복해 읽었다. 5분 남짓한 짧은 면접 시간에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할 수 없다는 간절함이 박람회장을 가득 메웠다.

20일부터 이틀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5 금융권 공동취업 박람회’에는 은행, 증권, 보험, 금융공기업 등 금융기관 76곳과 핀테크·IT 기업 4곳이 참여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구직자들은 현장 면접과 채용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금융권은 모의 면접과 피드백, 취업 전형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025 금융권 공동취업 박람회’가 열렸다./한재희 기자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025 금융권 공동취업 박람회’가 열렸다./한재희 기자

 

9년만에 처음 등장한 핀테크… 금융 영역 확장 확인

이번 박람회에 처음으로 참여한 IT·핀테크 기업들이 눈길을 끌었다. 전통 금융권으로 여겨지는 은행·카드·보험·증권사와 금융 공기업 외에 핀테크 기업까지 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내며 금융 영역이 확장됐음을 보여줬다. 

처음으로 부스를 마련한 카카오페이, 더즌, 씨엔티테크, 웹캐시 등은 이날 구직자 면접이 아닌 채용 상담에 열을 올렸다. 구직자들에 회사를 소개하고 어떤 인재를 원하는 지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다. 

카카오페이 부스에는 구직자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하루만 부스를 운영하는 만큼 상담 사전신청이 모두 꽉찼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핀테크 기업에 관심 있는 청년들과 소통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게 됐다”면서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게 회사를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025 금융권 공동 취업 박람회가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는 카카오페이(왼쪽)과 더즌 등  핀테크사도 4곳이 참여했다./한재희 기자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2025 금융권 공동 취업 박람회가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는 카카오페이(왼쪽)과 더즌 등  핀테크사도 4곳이 참여했다./한재희 기자

B2B 기업인 더즌(DOZN)을 찾는 구직자도 적지 않았다. 2017년 설립된 이 기업은 페이먼트·프롭테크·스크래핑 솔루션과 키오스크 환전 서비스, 더프리 선불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은행과 보험사, 카드사 대부분이 고객이다.

더즌 관계자는 “채용의 경우 수시 채용을 진행하다보니 이번에는 상담만을 진행한다”면서 “개발자나 금융IT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찾아 오신다”고 했다. 이어 “구직자들에게 회사를 알릴 수 있고 또 저희 회사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부분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드리고 있다”고 했다.

취업 상담을 받은 한 강우진(가명·24세)씨는 “개발자 채용에 관심이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몰랐던 회사였지만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필요로 하는 인재 등을 알게 돼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부터 군인까지… “부족한 부분 알게 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취업을 희망하는 다양한 청년들이 참석했다. 이날 오전 경주에서 학교 친구 20명과 함께 참석했다는 이민희(가명·17세)양은 “처음 면접을 보는거라 떨렸지만 면접이라는 딱딱함보다는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며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과 피드백을 주셔서 그에 맞춰 수정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파주에서 군 복무 중인 서경민(가명·23세)씨는 “휴가를 쓰고 참석했는데, 평소 자산 관리쪽에 관심이 있어서 증권사 면접을 신청했다”며 “오늘 박람회장을 더 둘러보고 제대 이후 본격적인 취업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했다.

시중은행 현장 면접을 본 황현민(가명·27세)씨는 “면접 질문은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이 많았고 은행원이 되었을 때 어떤 부분에서 강점을 나타낼 수 있는지, 해당 은행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어봤다”며 “제가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받았는데, 좀 더 준비가 필요하겠구나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박람회장에서 면접 준비를 함께 했던 스터디원을 마주쳐 정보를 주고 받기도 했다. 면접 질문과 분위기 등을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자 면접으로 긴장했던 표정도 풀리는 모습이었다. 

이나연(가명·26세)씨는 “박람회장에서 같은 입장인 취준생들을 보니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는 구직자들도 많았다. 부산에서 전날 서울로 올라온 김민희(가명·22세)씨는 “조용한 면접장이 아니라 다같이 면접을 보는 분위기다 보니 오히려 긴장을 안하게 됐다”며 “면접을 경험하게 돼 좋은 경험이었지만 현장에서 신청해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금융권 면접 팁은 ‘차별화’… “흔한 리더십 아닌 팔로워십이 강점될 수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금융권공동 채용 박람회 모습/한재희 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금융권공동 채용 박람회 모습/한재희 기자

채용 담당자들은 면접 팁으로 ‘차별화’를 강조했다. 특이한 이력이나 스펙이 아닌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한 강점이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취준생들이 너무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면서 자신만의 강점을 내보이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기업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다양한 경험과 경력, 직무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며 “실제로 입사자 가운데엔 체육 특기생부터 핸드볼 선수, 피아노 전공자 등 다양하다”고 했다.

이어 “소위 말하는 스펙도 중요하지만 조직원과 함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협력’을 중요한 능력으로 본다”면서 “대단한 리더십이 아닌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팔로워십’을 가진 분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다. 시중은행 인사팀 관계자는 “회사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가지고 와야한다”면서 “기본기 위에 열정이 더해지고 자심감 있는 태도로 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공기업 인사팀 관계자 역시 “공기업으로서 수행하는 공적인 역할과 상대해야 할 고객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금융공기업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각 개별사의 특징과 업무의 특수성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한편 12개 은행은 현장에서 1대 1 면접을 실시하고 우수면접자로 선발되면 향후 해당 은행 채용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혜택 1회를 제공한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