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관세 불확실성에 더해 노조 리스크, 배터리 공장 차질 등 대외 변수까지 겹치며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노조와의 합의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대규모 성과급도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2028년까지 21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재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2028년까지 21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재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한국과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관세 인하 적용 시점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25% 관세는 현대차그룹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회사가 미국 현지 가격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관세 부담액은 고스란히 영업이익을 깎아내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관세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약 1조6000억원 줄었다고 밝혔다. 매월 약 5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관세가 15%로 낮아질 경우 손실은 32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결국 적용 시점이 늦어질수록 매달 2100억원의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업계는 3분기에도 관세로 인한 손실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낮은 현지 생산 비중도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다. 현지 생산량에 따라 관세 부담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024년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량 중 현지 생산분은 71만대로 42%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 도요타는 55%(127만대), 혼다는 72%(102만대)였다.

정부는 이에 따라 관세 협상 후속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0일 미국 워싱턴DC로 향한 것도 그 일환이다. 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을 만나 후속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방문이 성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우리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87조6550억원)와 1000억달러(약 139조3300억원) 규모의 에너지 구매 협의를 마무리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미국이 대규모 투자 약속을 지렛대로 삼아 관세 적용 시점을 늦출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노사 합의에 따른 성과급 지급도 부담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10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기본급 10만원 인상 ▲성과급 450%+1580만원 ▲주식 30주 지급 등이 이뤄진다.

문제는 성과급이다. 평균 통상임금을 400만원으로 가정하면 직원 1명이 받게 될 성과급과 주식 보상은 약 4000만원에 달한다. 반기보고서 기준 직원 6만3000명에 지급해야 하는 총액은 2조5000억원으로, 올해 상반기 연결순이익(6조6326억원)의 약 40%에 해당한다. 여기에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등 계열사들도 유사한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어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6일(현지시각)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 뉴스1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6일(현지시각)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 뉴스1

여기에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준공 차질도 악재로 떠올랐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법인 ‘HL-GA 배터리’ 건설 현장을 단속해 비자 문제를 이유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구금했다. 이로 인해 공장 건설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준공이 지연되면 미국 내 배터리 수급 차질이 불가피하고, 결국 한국에서 배터리를 수입해 쓸 경우 관세 부담이 추가된다.

다만 현대차 측은 “이번 사건으로 준공 일정이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미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변수가 악재로 작용하면서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기업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가 장기화되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