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반도체 생산 능력의 50%를 미국으로 옮기자는 미국의 구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공식 거부 의사를 전했으나 이에 대한 정치권·업계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3일 대만 중앙통신사(CNA) 등의 보도에 따르면 정리쥔 대만 행정원 부원장(부총리급)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50대 50 분할’에 대해 약속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이러한 조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과의 협상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았다고 매우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생산능력 관련 양보보다는 대미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춰 미국과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명 ‘대만식 모델’이다. 대만이 기업의 자율적인 투자 계획, 금융보증 메커니즘 구축에 따른 자금 지원, 미국 내 산업 클러스터 육성 등을 하면 미국이 토지와 수도·전기 등 인프라와 비자 및 규제환경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방안이 지난달 25∼29일 5차 협상에서 미국 측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정 부원장이 거듭 진화에 나선 것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정부 목표는 반도체 제조시설을 대폭 국내로 유치해 자체 칩을 생산하는 것이고 대만에 ‘우리가 절반, 당신들이 절반을 만들어 50대 50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고 밝히며 대만을 압박하면서다.
정 부원장은 1일 미국에서의 5차 협상을 마치고 귀국해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났을 때도 “협상팀은 반도체를 5대 5로 나누는 데 대해 승낙하지 않았다”며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고 이러한 조건에 동의할 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가 ‘반도체 절반 분할’ 압박에 응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으나 대만 야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대표)은 “TSMC를 거의 모두 미국으로 옮겨 대만의 ‘실리콘 방패’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누구도 대만을 팔아넘기거나 실리콘 방패를 파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리콘 방패는 반도체 시장에서 TSMC의 독보적인 위상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대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업계 의견도 비슷하다. 대만 전자기기 업체 페가트론의 퉁쯔셴 회장은 2일 한 행사에서 미국의 제안에 대해 “대만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수십년간의 전략과 수많은 인재, 많은 자금이 축적된 결과”라며 “대만의 경쟁력에 불리하다면 나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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