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답보 상태에 있던 자동차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합의로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가 15%로 인하된다. 새 관세율은 이르면 11월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그동안 관세 부담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던 현대자동차·기아, GM 한국사업장(이하 한국GM) 등 완성차 업계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뉴스1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뉴스1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고, 협상 문안과 팩트시트가 모두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발표를 종합하면 이번 합의에는 대미 금융투자 3500억달러가 포함됐다. 구체적으로는 현금 투자 2000억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로 구성된다. 연간 투자 한도는 200억달러로 설정됐으며, 사업 진척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외환시장 부담은 제한적이고 시장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번 관세 완화는 업계 전반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융업계는 관세 부담으로 인해 현대차·기아가 3분기에만 총 2조400억원의 관세 손실을 입을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는 2분기 손실액보다 51.8% 증가한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분기까지만 해도 미리 확보한 물량으로 관세 영향을 일부 상쇄했지만, 3분기부터는 수출 차량 전량이 25% 관세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손실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고 설명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연간 부담액은 8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일본 도요타자동차(6조2000억원), 독일 폭스바겐(4조6000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30일 경영실적 발표에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9.2% 감소한 2조537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률도 전년 동기 대비 2.9%포인트 하락한 5.4%로 집계됐다. 3분기 관세로 인한 손실은 1조8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은 “관세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1조8000억원의 영업이익 감소가 발생했다”며 “고객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조비 절감 등을 통해 비용의 약 60%를 만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가 15%로 낮아지면 공격적인 신차 출시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출을 위해 선적 대기 중인 쉐보레 모델들. / 한국GM
수출을 위해 선적 대기 중인 쉐보레 모델들. / 한국GM

한국GM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소형차 수출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24년 판매량은 총 49만9559대였으며, 이 가운데 47만4735대(95%)가 수출됐다. 그중 미국으로 향한 물량은 41만8782대로 전체의 88.2%를 차지했다.

이 같은 구조 탓에 한국GM은 관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GM 본사는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같은 기간 관세로 11억달러(약 1조534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전체 손실의 절반가량이 한국GM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월 동안 5억5000만달러의 수익이 줄어든 셈이다.

일각에서는 관세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GM이 생산지를 이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면서 ‘철수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철수 우려는 사실상 해소된 분위기다. 업계는 관세가 15%로 완화되면서 한국 생산 거점의 경쟁력이 일정 부분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품업계 역시 한시름 덜게 됐다. 2024년 기준 미국으로의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82억2200만달러에 달했다. 25% 관세가 유지될 경우 부품업계가 부담해야 할 연간 관세 비용은 20억555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현대모비스를 제외한 100대 상장 부품사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올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0.2% 감소한 1조494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관세가 15%로 인하되면 부담액은 12억3330만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고율 관세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생산비 부담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축돼 있었다”며 “이번 타결로 수출 물량 조정과 투자 계획 재검토 등 경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