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에 ‘수익성 훈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과 GM한국사업장(이하 한국GM)의 표정은 엇갈린다. 현대차그룹은 안정 속 재정비에 나서는 반면, 한국GM은 직영 서비스센터 운영 종료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사상 최대 완성차 판매 실적을 기록 중인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담이 줄어들면서 수익성 중심의 ‘안정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은 연말 사장단 정기 인사를 통해 조직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인사 폭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사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안정’에 초점을 맞춘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들의 변화도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올해 초 3년 임기로 연임했으며,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사장 역시 2024년 11월 승진해 정 회장의 글로벌 전략 추진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백철승 현대트랜시스 대표와 권오성 현대위아 대표도 최근에 선임된 만큼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은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현대모비스가 뚜렷한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로보틱스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 이 사장의 연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2조265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23년 2조2953억원으로 늘었고, 지난 2024년에는 3조735억원을 달성하며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1~3분기 영업이익은 2조42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했다.

다만 정의선 회장이 강조하는 혁신과 인공지능(AI) 전략 강화 기조에 따라 로보틱스,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과감한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협력을 공식화하며 기술 중심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인사에서는 신사업 및 소프트웨어 부문 인력 재배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영 서비스센터 매각에 대해 노조가 동서울서비스센터에 부착한 문구. / 허인학 기자
직영 서비스센터 매각에 대해 노조가 동서울서비스센터에 부착한 문구. / 허인학 기자

한편 숨 고르기에 들어간 현대차그룹과 달리 한국GM은 관세 인하 수혜에도 불구하고 내부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회사가 2026년 1월 1일부터 전국 9곳의 직영 서비스센터 신규 접수를 중단하고, 2월 15일부터 운영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노사 관계가 다시 악화된 것이다.

한국GM은 서울·인천·부산 등 전국 주요 거점의 직영센터 운영을 2월 15일부로 중단하고, 380여개 협력 서비스센터 중심의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기존 직영센터 직원들은 회사 내 다른 부서로 재배치될 예정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지난 5월 발표한 직영센터 매각 방침에 따른 것이다. 당시 회사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재무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영센터와 부평공장 내 유휴자산 일부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두고 “올해 임단협에서 약속한 서비스센터 유지 합의를 위반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12일 성명을 통해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서 직영센터 문제는 고용안정특별위원회를 통해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음에도, 폐쇄 일정 통보는 명백한 노사 합의 파기”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은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를 이유로 자산 매각을 추진했지만, 관세가 15%로 조정됐음에도 구조조정을 멈추지 않는 것은 핑계”라고 비판했다.

서비스센터 체제 전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노조는 “핵심 정비 업무를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것은 품질 저하와 고객 서비스 악화를 초래한다”며 “정비 품질 저하로 인한 고객 불만은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전날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직영센터 폐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현장 중심 저항·법적 대응·정치권 연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측에 강력히 맞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노사 충돌이 한국GM의 향후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조의 주장처럼 고객 경험과 직결된 서비스 품질 문제가 현실화될 경우, 신차 판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GM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슈퍼크루즈’ 도입과 캐딜락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에스컬레이드 IQ’ 출시 등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 쇄신에 나서고 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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