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채권을 혼합해 투자하는 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가 하락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인공지능(AI) 거품 우려 등으로 주식시장이 한풀 꺾일 때 단일 주식보다 더 높은 성과를 올렸다. 변동성 장세에 대응해 유효한 투자 방법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국의 데이터 분석업체 팔란티어와 미국 국채를 섞은 ‘KIWOOM 팔란티어미국30년국채혼합액티브(H)’ ETF는 지난 5거래일간(3~7일) 3.9% 하락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팔란티어 주가 수익률 –13.2%를 약 10%포인트 웃돌았다.
다른 종목도 비슷하다. 테슬라 주가는 11월 이후 5.8% 내려갔으나 ‘TIGER 테슬라채권혼합Fn’ ETF의 하락분을 고작 0.1%였다. ‘ACE 엔비디아채권혼합’ ETF도 이달 1.7% 하락하며 9.6% 내려간 엔비디아보다 8%포인트 더 나은 성과를 올렸다. 삼성전자가 ‘10만전자’에서 왔다갔다하는 불안한 장세를 보이며 이달 8.4% 급락한 것과 다르게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은 3.0% 하락률에 그치며 선방했다.
이는 주가 지수형 ETF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S&P500은 5거래일간 2.2% 하락하는 부진한 장세를 보였으나 이 기간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등락률 1.3%) 등 S&P500를 기초지수로 삼은 혼합형 ETF들은 오히려 상승했다. ‘ACE 미국나스닥100미국채혼합50액티브’(0.8%) 등 나스닥100에 투자하는 혼합형 ETF들도 나스닥100(-4.0%)과는 상반된 양상이었다.
이 같은 현상은 혼합형 ETF의 상품 구조에서 비롯됐다. 혼합형 ETF는 주식을 20~50%, 채권을 50~80% 비중으로 담아 주식 하락분을 채권으로 일정 부분 상쇄한다.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는 절반을 주식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잔존만기 3개월 이하인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데 5거래일간 미국 3개월 채권 금리는 0.4% 오르는 데(채권 가격 하락) 그쳤다.
‘KIWOOM 팔란티어미국30년국채혼합액티브(H)’에 담긴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도 0.6%로 팔란티어(-13.2%)와 격차가 컸다. ‘ACE 엔비디아채권혼합’은 엔비디아 30% 투자하고 나머지는 한국 단기 국채 등에 투자하는데 국채 1년물 등락률은 1.3%로 비교적 낮았다.
이렇다 보니 상승장에선 불리하다. 높은 채권 비중만큼 주식 상승분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스닥100은 올해 들어 19.3% 올랐으나 ‘ACE 미국나스닥100미국채혼합50액티브’와 ‘TIGER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Fn’는 각각 8.1%, 4.9% 올랐을 뿐이다.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의 올해 상승률도 21.0%로 삼성전자(84.0%)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를 고려해 ‘AI 버블’ 우려 등으로 급등락이 반복되는 국면에서 안전 투자성향의 투자자들이 투자할 경우 유효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S&P500 등 미국 주가지수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일정 기간 조정 등의 변동성 장세를 보일 수 있다. 또 혼합형 ETF의 경우 퇴직연금에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연금 계좌 포트폴리오 종목으로서도 고려할 만하다.
김승현 하나자산운용 ETF·퀀트솔루션본부 본부장은 “예·적금만 하다가 ETF 투자를 처음 하는 투자자나 손실에 민감한 50대 후반 이상 연령대의 경우 (주식형 ETF보다) 혼합형 ETF가 더 나을 수 있다”면서 “혼합형 ETF는 퇴직연금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꾸준히 적립하면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고 상품을 선택할 땐 보수가 낮은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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