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는 가상자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코인사기의 대명사가 됐다. 2022년 5월 9일, 달러에 고정돼야 할 코인의 가치가 갑작스레 뚝 떨어지며 일주일만에 시장에서는 40조원의 돈이 증발했다.
개발자이자 사태를 촉발한 권도형씨는 2년간의 도주 끝에 지금은 미국에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사건이 발생했던 2년전 그 당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대표가 루나 거래를 종용하는 게시글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이다. 사태가 발생한지 겨우 3일 만의 일이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투자자들에게 특정 가상자산 투자를 권유하는 이벤트는 종종 있다. 새로운 마케팅를 진행하고 있을 수도 있고, 시장이 활황일 때 투자자 유입 경쟁을 펼치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만 28만명의 피해가 발생한 루나 코인을,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홍보활동을 벌였다는 점에 업계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해당 거래소는 위험한 투자를 종용한다며 뭇매를 맞았다. 그 해 11월 거래소들은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과 투자자 보호를 위하겠다며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 닥사)’를 만들었다.
닥사가 설립되고 국내 금융당국 역시 시장에 관심을 조금씩 보이는 듯 했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고, 강해진 특금법 규제로 일정 요건 이상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20여개 거래소가 시장에서 퇴출됐다. 닥사에 속한 5대 거래소는 많게는 수억, 수천만원을 써가며 “우리는 안전하다”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사장된 가상자산에 대해 한 거래소가 이벤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3위 거래소라 불리는 코인원이 그 주인공이다.
비트코인골드(BTG)는 4년여 전 큰 해킹 사고를 겪은 후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대형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다. 지금은 국내 거래소인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거래량이 99%를 차지한다. 이달 업비트와 빗썸 등 거래소는 비트코인골드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이들 거래소들이 이제와 해당 가상자산의 거래를 정지하는 것도 늦은 감이 있지만, 보다 이상한 건 코인원의 대처다. 업비트의 거래지원 종료 공지가 올라온 날 ‘입금 이벤트’를 실시한 것이다. 통상 거래정지가 예정된 가상자산의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는 점을 노려 자금을 옮겨받겠다는 의도다.
가상자산 시장 자체가 리스크가 크고 변동성이 높은 만큼 완벽한 투자자 보호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수수료를 위한 이벤트는 어쩔 수는 없다. 독점이 됐다는 비판을 받는 시장에서 과당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한낱 마케팅으로 보기에는 과하다. 아무리 면밀히 검토를 해 보았더라도, 다수의 거래소들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가상자산을 투자자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비트코인골드 뿐만이 아니다. 연초에도 여러 가상자산과 관련해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손해를 봤고, 누구도 지금까지 책임지고 있지 않다.
‘좋은 코인’, ‘나쁜 코인’을 가리는 것은 누구도 권한이 없다. 하지만 2년전 약속한 ‘투자자 보호’는 이제 시늉도 하지 않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해 보인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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