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시중은행들이 대출 재개에 나서고 있다. 연초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가 리셋되면서 대출 여력이 생긴 덕분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 정책의 약발이 아직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라 큰 기대는 접어야 할 거란 진단이다. 

당장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해 연간 총 증가 목표분을 초과 달성해 올해 연간 대출 한도가 더욱 줄어들 거란 전망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짐에 따라,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을 더욱 보수적으로 내줄 거란 설명이다.

서울에 위치한 은행 개인대출 및 소호대출 창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뉴스1
서울에 위치한 은행 개인대출 및 소호대출 창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뉴스1

8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지난해 6월 5일부터 중단했던 대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갈아타기(대환)를 오는 10일부터 재개한다. 수도권 소재 2주택 이상 차주의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 또한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NH농협은행은 지난 2일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취급하고, 지난달 30일 비대면 직장인 신용대출 4종 판매를 재개하는 등 가계대출 제한을 조금씩 완화해 왔다.

KB국민은행도 타 은행 대환 용도의 신규 전세대출을 취급하며 대출 재개를 시작했다.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한 대출 한도도 해제했다. 올해부터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2억원) 또한 폐지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1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전세대출 취급을 재개하며,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렸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NH농협은행에서는 신규 분양주택 전세대출도 가능해진다.

대출모집법인 등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 신청도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재개됐다. 다만 NH농협은행은 월별 한도 제한을 유지한다.

비대면 신용대출은 우리은행을 제외한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에서 가능하다.

이 같은 은행의 행보는 '실수요자에게 금융 공급이 이어져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방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말 “가계대출 관련 실수요자에 자금 공급을 더욱 원활히 하고, 지방 부동산 가계대출과 관련해서는 수요자가 더욱 여유를 느끼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장과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별로 연간 가계대출 총 공급 목표액 등을 설정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가계부채 연간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은행에는 올해 페널티가 주어질 예정이다.

당국 페널티 적용에서 제외되면 대출 물량을 올해 목표치 내에서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다. 5대 은행 중 올해 당국 페널티를 피하는 곳은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두 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B국민은행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 잔금대출 한도를 6000억원까지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시중은행 중 가장 큰 규모다. NH농협은행 또한 KB국민은행의 뒤를 바짝 쫓아 한도를 4000억원까지 증액하는 등 잔금대출 경쟁을 격화하고 있다.

두 은행의 전향적인 스탠스와 상관없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도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해외 상황이 심상찮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고착화된 강달러 현상이 실제 취임 이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이 경우 시중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은행권이 대출을 보수적으로 내줄 수밖에 없을 거란 설명이다. 오는 7월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도 변곡점이 될 예정이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물가상승률과 비례하지 않는데, 집값은 5년 새 두 배가 뛰었다”며 “은행이 지난해처럼 가계대출을 보수적으로 내주지 않으면, 강달러 기조에서 부동산 담보가치도 떨어져 은행에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아 기자
kimka@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