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국내 산업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는 가운데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도 다가올 경제 변화에 대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편관세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헬스케어 분야의 규제 완화와 약가 인하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따르면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는 협회가 발간한 27호 정책보고서(KPBMA Brief)에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지형 변화와 한국제약바이오기업의 대응’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등 대외 변수가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 지형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이 부교수는 그간 미국이 바이오보안법(Biosecure Act) 발의 등 해외 의약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중국 견제 정책이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통해 중국과 경쟁 관계인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럽과 일본에서도 각국의 제약바이오 의약품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은 2020년 ‘유럽 제약산업 전략’을 발표하고, 2023년 의약품 공급 안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 발표와 함께 ‘핵심의약품연합’을 결성하고 ‘바이오기술법’을 제정해 관련 규제 완화와 투자 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도 ‘바이오 전략 2019·2020’, ‘백신 개발, 생산체제 강화 전략’, ‘바이오경제전략’, ‘바이오 경제전략 실행계획’ 등을 잇따라 수립하며 2030년까지 최첨단 바이오경제 사회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향후 글로벌 제약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에 대비해 우리의 제약바이오 의약품 공급망을 재점검하고, 관련 분야에서의 국제협력 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기 행정부와 유사한 기조를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1기 행정부는 행정명령을 통해 메디케어에 공급하는 제약 제품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저렴한 수준으로 공급돼야한다고 했다. 연방정부 조달 시장에서 핵심 의약품(essential medicenes)에 한해 ‘미국 내 생산’ 원칙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정책은 바이든 정부 시절 철회됐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통해 재부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약가 인하 정책과 맞물려 있는 국내 주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과 바이오시밀러 기업 등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약가 인하를 위한 행정명령 등이 바이오시밀러에 우호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처방의약품급여관리업체(PBM)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해 바이오시밀러 사용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미국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 정책인 ‘생물보안법안’도 올해 재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생물보안법안은 미국의 세금이 적대국 바이오기업에게 유입되지 않도록 하고 미국인 유전자데이터가 해외 적대국에 이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이오 장비와 원료 등의 구매를 제한하겠다는 법안이다.
이는 사실상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한 법안이다. 법안이 제정될 경우 중국 BGI 그룹과 그 자회사인 MGI 테크, 컴플리트제노믹스(Complete Genomics), 중국인민해방군과 연계된 우시앱텍(WuXi AppTec),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미국이 규정한 ‘적대적 바이오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 사용이 금지된다.
현재 미국이 중국 CMO, CDMO 바이오 기업에 위탁하고 있는 물량은 연간 2조원에 달한다. 만약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넥스, 에스티팜 등 국내 CMO·CDMO기업이 수혜를 얻게 된다.
문제는 지난해 생물보안법이 국방수권법안(NDAA)에 이어 예산지속결의안에도 포함되지 못하면서 당초 빠른 시일내 통과가 예상된 해당 법안이 불발된 상황이다. 이는 중국 기업의 로비가 아직 미 행정부에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중국 기업들이 생물보안법안을 방어했다”며 “2025년에 다시 입법 절차를 거치더라도 규제 대상 기업에 대한 지정 및 해제 절차 등 논란이 됐던 조항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국내 CDMO 기업의 미국 내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다양한 국내 기업이 중국 기업과 거래하던 글로벌 제약사와 계약을 늘려가고 있기도 하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는 미중 바이오 패권 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에게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기업 및 정부와의 협력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아직 독립적으로 미 연방 정부 조달시장에 참가하는 사례가 드물다”며 “미국 내 고객사와 협력 강화를 통해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대 제약바이오 시장인 미국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밀고 있는 약가 인하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해 적극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며 “다행히 국내사들은 이전부터 오리지널 의약품과 경쟁하고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과 제품 우수성을 앞세워 역량을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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