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한령 해제에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한한령 해제가 실현됐을 경우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 게임, 음악 등 주요 K콘텐츠 산업에 어떤 영향이 끼쳐질 지 IT조선이 살펴봤다. [편집자주]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 게임 시장으로 꼽힌다. 특히 중국은 콘솔게임 비중이 큰 미국과 달리 PC·모바일 게임 비중이 높다. 즉 PC·모바일 게임에 강한 우리나라의 최대 게임수출국인 셈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게임의 수출 국가별 비중은 중국이 25.5%로 가장 컸다. 중국 다음은 동남아 19.2%, 북미 14.8%, 일본 13.6%, 대만 10.4% 순이다.
이런 중국에 게임을 서비스하려면 중국 국가신문출판서의 콘텐츠 심사를 통과해 판호라는 서비스 허가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판호는 한국게임의 중국 진출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한국게임학회는 중국이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국내 배치 이후 판호 발급을 중단한 2020년까지 4년 동안 10조~17조원쯤의 게임 업계 매출이 증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기 IP여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라도
한국게임의 중국 서비스가 막힌 동안 중국 게임은 꾸준히 한국에 진출해왔다. 이렇게 막혔던 판호가 다시 나오기 시작한 건 2020년 12월이다. 2020년 12월 컴투스의 모바일게임 ‘서머너즈 워 : 천공의 아레나’에 판호가 발급된 뒤 점차 발급량이 늘었다. 2021년 6월에는 펄어비스 ‘검은사막 모바일’이 판호를 받았다.
판호가 나오는 주기는 길었다. 2021년 6월 펄어비스 이후 1년 반 만인 2022년 12월엔 넷마블 ‘제2의 나라: 크로스월드’, 넥슨 ‘메이플스토리M’ 등에 판호가 나왔다. 2023년 6월 넥슨 ‘블루 아카이브’, 12월 위메이드 ‘미르M’ 등이 판호를 받고 2024년에도 네오위즈 ‘고양이와 스프’, 넥슨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펄어비스 ‘검은사막 온라인’, 엔씨소프트 ‘리니지2M’, 시프트업 ‘승리의 여신: 니케’ 등이 판호를 받았다.
다만 관련 업계는 중국 정부로부터 판호를 발급받았다고 하더라도 성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펄어비스는 판호를 받아 2022년 ‘검은사막 모바일’을 중국에 출시했으나 수익을 내지 못해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넥슨이 지난해 중국에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출시한 지 4개월 만에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매출 8억2000만달러(약 1조원)를 돌파한 것과 다른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위메이드의 미르의 전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크래프톤의 화평정영(배틀그라운드)처럼 중국에서 이미 인기가 많은 국내 게임 IP을 제외하고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는 이미 중국 게임 경쟁력이 우리나라를 앞질렀다는 말도 나온다. 판호를 획득해 중국에 진출해 봐야 게임 품질에서 밀려 중국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중국 게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전역의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인기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센서타워가 지난해 기준 국내 안드로이드 OS와 iOS 앱 내 구매수익을 조사한 결과 1위 리니지M(엔씨소프트), 4위 오딘: 발할라 라이징(카카오게임즈)를 제외한 2, 3, 5위는 중국게임이다.
콘솔도 빠르게 공략하는 중국
서구권에서 강세인 콘솔 부문도 우리나라는 중국에 밀린다. 중국 게임업계는 PC·모바일 중심인 자국 게임시장뿐 아니라 북미·유럽 등 서구권을 공략하기 위해 콘솔게임을 우리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중국 게임사이언스에서 개발한 콘솔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지난해 11월 기준 2230만장이 팔렸다. 게임사이언스가 초기 판매량의 70%는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밝힌 점을 고려해도 ‘검은 신화: 오공’은 해외에서 700만장쯤 팔린 셈이다.
글로벌에서 흥행했다는 평을 받는 시프트업의 플레이스테이션(PS)5용 콘솔게임 ‘스텔라 블레이드’의 올해 말쯤 추정 판매량이 500만장쯤이다. 이는 PS5용과 PC버전을 더한 수치다.
중국은 넷이즈의 ‘연운십육성(Where Winds Meet)’을 비롯해 S게임의 ‘팬텀 블레이드 제로’, 이클립스 글로우게임즈의 ‘타이드 오브 어나힐레이션’ 등 서구권 콘솔게임 스튜디오와 견줄만한 수준의 콘솔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모바일게임 중심 한국 게임업계가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밀렸을 뿐 아니라 게임 플랫폼별 기획력, 기술력, 개발속도 등 전반적인 역량에서 모두 중국에 밀린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게임의 비호감 요인이 드라마·영화·음악 등 다른 콘텐츠와 다른 점도 중요하다. 세계 26개국에서 한국 게임을 경험해 본 이들이 꼽은 한국 게임에 관한 호감을 저해하는 요인 1위는 ‘이용 비용이 많이 들어서(17.9%)’다. 2위는 ‘높은 디바이스 사양이 필요해서(16.8%)’, 3위는 ‘유료 아이템, 캐릭터 카드 등 지나친 소비를 유도해서(15.7%)’다.
1위와 3위 답변은 한국 게임의 과금 유도에 관한 불만을 말한다. 반면 다른 콘텐츠는 ‘한국어가 어렵고 생소해서’,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번역이 미흡해서’ 같은 이유가 호감 저해 요인으로 꼽힌다. 이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중국, 일본, 베트남, 미국, 캐나다, 브라질, 영국,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26개국 만 15~59세 현지인 중 한국게임을 플레이해 본 1만1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닌텐도와 소니, 세가가 버티는 콘솔게임 강국 일본에서도 중국 게임이 먹히는데 우리나라는 게임의 재미, 그래픽, 개발 속도 등 전반적으로 다 밀린다”며 “게임 내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게이머의 반감까지 고려하면 지금 한국 게임업계 상태로는 한한령이 해제돼도 형편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