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분들은 8시 30분부터 주총장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주주총회가 열린 26일, 강남 메리츠타워 1층은 출근하는 회사원들 사이로 주총에 참석하려는 주주들과 안내하는 직원들로 북적였다. 8시 30분이 되자, 바리케이드가 열렸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강남역 인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창과 한 눈에 봐도 널찍한 회의실, 호텔식 핑거푸드, 무대에 마련된 홈바형태의 의자, 그리고 개별 책상 위에는 메리츠금융의 경영철학을 보여준다는 윌리엄 손다이크의 저작 '현금의 재발견'이라는 책자까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버크셔 헤서웨이식 열린 주총을 지향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총 개막 시간인 9시가 되자 여느 상장사 주총과 별반 다를 것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무대에 있는 대형 TV가 켜졌고, 화면 속에 진짜 주총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20여평 남짓한 회의실에 회사 임원 및 이사들과 20여명 남짓한 주주들이 기다란 테이블을 차지하고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개회가 선언됐고, 주총 의장을 맡은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안건 하나하나 올릴때마다 대표 주주 한 명씩 손을 들어 동의의 변(辯)을 늘어놓은 뒤, 다른 주주들이 일제히 "동의합니다"라고 찬성의 목소리를 냈다.
예컨대, 2호 의안으로 올라온 정관 개정(안) 승인의 건을 김 부회장이 상정한다고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든 듯 한 주주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이내 대본에 씌여 있는 듯 국어책을 읽는 듯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어 나갔다.
"주주 OOO입니다. 해당 내용은, 주주들이 배당금액을 보고 투자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주주의 배당 예측 가능성을 제고시키는 것이며, 법률 개정에 따른 법규 반영사항으로, 주주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본 주주는, 제2호 의안을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동의하는 바입니다."
재무제표 승인, 이익배당 결의, 사외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 다른 안건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의장의 안건 부의 직후 회사 측으로 보이는 주주의 발언과 다른 주주들의 "동의합니다" 재청까지 틀림이 없었다.
이 광경을 본주총장이 아닌 별도의 공간으로 안내된 50여명의 다른 일반 주주들은 TV 화면 넘어 그들만의 주총을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다. 잘 짜여진 각본처럼 메리츠금융의 주총은 정확히 16분만에 끝났다.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회사는 일반주주들을 위한 일종의 '차담회'를 마련했다며 주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나름 주주들과 소통하겠다며 마련한 부대행사였다.
김상훈 메리츠금융 IR 담당 상무가 나와, 주주들에게 배포한 '현금의 재발견'이라는 책이 왜 메리츠금융의 선정도서인지를 10여분간 설명했다. 이어 김용범 부회장의 경영철학에 대한 사내강연용 영상을 10여분간 틀어 보여줬다.
이후 김상훈 상무와 Q&A 시간이 이어졌다. 그나마 회사의 경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 주주들의 봇물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MG손보 인수 무산, 홈플러스 투자 대안, 조정호 회장의 후계 승계, 회사 차원의 금융교육 등 다채로운 질문들이 나왔고, 김 상무의 대답이 이어졌다.
김용범 부회장은 차담회 막판 잠깐 인사를 하겠다며 들렀다. 김용범 부회장은 "작년에 주주님이 많이 오셨는데 그냥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듣고 올해는 좀 다르게 해보려고 준비를 한 것"이라며 "미흡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을 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행사장을 떴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주총장 분리 운영에 대해 "먼저 온 주주들이 있어 그 분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자리가 다 차 불가피하게 다른 장소로 모신 것이지 막은 건 아니다"라며 "내년에는 미진한 점을 보완해 주주들 불만이 없도록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손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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