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자산운용사의 계열사를 통한 펀드 판매 비중이 30%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운용사는 40%를 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사항으로 나온 문제지만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등은 여전히 같은 계열사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판매 금융사는 단기 운용 펀드인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금액이라 많아 보이는 것일뿐이라 설명하고 있으나 금융권 ‘일감 몰아주기’ 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설정잔액 30조원 이상인 국내 10대 자산운용사(KB·미래에셋·삼성·신한·NH아문디·키움·한화·한국투자·우리·IBK)의 계열사 펀드 판매금액은 총 125조876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판매금액(448조4756억원)의 28.1%를 차지하는 규모다. 지난해 말 27.8%였던 판매 비중과 비교해 석 달 만에 0.3%포인트 높아졌다.
운용사별로 보면 NH아문디자산운용이 44.7%(지역농협 제외)로 가장 높았다. NH아문디자산운용이 NH투자증권·NH농협은행·NH선물을 통해 판매한 펀드설정액(잔액기준)은 18조2571억원에 달했다. 1분기 판매금액은 2조8270억원으로 이중 1조2460억원(비중 44.1%)이 계열사로부터 나왔다.
KB자산운용이 36.4%로 뒤를 이었다. KB자산운용은 KB증권·KB국민은행·KB손해보험에서 판매한 펀드설정액이 22조7393억원이었다. 1분기로 한정하면 계열사 판매 비중은 39.1%(3조1151억원 중 1조2303억원) 수준으로 더 컸다. 기업은행·IBK투자증권을 계열사를 둔 IBK자산운용도 계열사 판매설정액 비중이 35.0%(30조5103억원 중 10조6669억원)로 세 번째로 높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생명에서 판매한 펀드설정액 비중이 32.8%로 높았다. 이어 신한자산운용 계열사 펀드설정액 비중이 31.9%, 삼성자산운용 27.8%, 우리자산운용 18.4%, 한국투자신탁운용 18.3%, 한화자산운용 16.1%, 키움투자자산운용 8.6% 수준이었다.
해당 운용사들은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설명이다. NH아문디자산운용 관계자는 "2003년 설립 후 계열사 중심의 판매로 시작해 지속적으로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은 "비대면 판매 등 고객이 직접 선택해서 투자하는 판매금액 등이 포함된 수치라서 이를 제외하면 20% 수준으로 높지 않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의 높은 계열사 의존도는 금융권의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 관행에 따른 결과다. 금융당국은 금융투자업 규정을 통해 금융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연간 총펀드 신규판매금액의 25%로 제한하고 있으나 비중을 계산할 때 MMF(머니마켓펀드)·ETF(상장지수펀드) 등 8개 항목을 제외한다. 이렇다 보니 금융사들은 관련 공시에서 MMF 등을 포함한 금액이라는 사유를 들며 비율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당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사들이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상품 몰아주기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국감 당시 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계열사 ETF 보유량은 ▲삼성 81.9% ▲미래에셋 52.4% ▲KB 50.2% ▲한국투자증권 50.5% 수준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를 한번 보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보완하겠다”고 답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방지 대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금융감독원도 작년 하반기 계열사 ETF 몰아주기 관련 조사에 나섰으나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는 모습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있을 수 있나를 살펴봤는데 유의미한 수치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사이 금융사 계열 운용사의 펀드 밀어주기는 관행처럼 굳어진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사 간 공정 경쟁을 위해 계열사 펀드 규제를 자산 종류 구분 없이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ETF의 경우 운용 과정에서 계열사 자산이 과도하게 쏠리면 시장 왜곡과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고 MMF 역시 대규모 자금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장의 투명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며 “MMF와 ETF를 포함한 전체 펀드 시장을 대상으로 일원화해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품목별·자산별 비중 제한 등 보다 정교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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