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상호 부과한 고율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하면서, 국내 가전업계가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주요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 동남아에 두고 있는 업체들은 여전히 관세 리스크에 노출돼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업계는 이번 유예 조치가 일시적 조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긴 이르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유예 기간 종료 후 실제로 관세 부과를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가전 기업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현지시각)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상호 관세를 대폭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은 14일부터 90일간 고율 관세를 115%p 낮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포함한 가전 업체들은 당장 숨통이 트였지만, 유예 종료 이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다시 고율 관세가 부과될 수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핵심 생산기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아직 별도 관세 협상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다. 46%에 달하는 상호 관세 부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품목별 적용 여부도 구체화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글로벌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 북부 박닌과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TV, 네트워크 장비, 디스플레이 등 주요 품목도 베트남에 집중돼 있다. LG전자 역시 하이퐁 공장에서 북미 수출용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TV 등을 생산 중이며, 지난해 전체 생산량(약 1100만대)의 80만~160만대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LG전자는 리스크에 대비해 베트남 생산라인 가동률을 조정하고 있다. 하이퐁 냉장고 라인 가동을 줄이는 대신,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의 냉장고 생산을 늘려 미국향 공급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구체적인 조정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상황을 면밀히 주시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미중 관세 유예는 한국과 베트남 등 제3국 입장에서 협상 여하에 따라 리스크 완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90일 유예 종료 이후 관세 재부과 가능성이 여전히 커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우리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가 위치한 국가에 부과될 관세율이 관건”이라며 “베트남처럼 상호 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의 경우 관세 적용 여부에 따라 제품 공급단가와 생산 전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선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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