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한화오션 등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이 미국과 특수선 사업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조선업 부흥 전략의 주요 파트너로 한국을 꼽은 이후 국내 조선업계 고위 인사들의 방미와 미 주요 인사들의 방한이 이어지면서 구체적 협력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조선업 협력이 다음주 진행되는 한·미 관세 협상에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오른쪽)이 5월 16일 미국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대표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 HD현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오른쪽)이 5월 16일 미국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대표와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 HD현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는 5월 16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한·미 조선 산업 협력을 논의했다.

이번 만남은 USTR 대표단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 참석을 위한 방한을 계기로 미국 측의 요청으로 진행됐다. 국내 조선업계가 USTR 대표와 공식 회담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HD현대, 한화오션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간 다양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에 협력 의지를 드러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HD현대중공업과 미국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 간 협력 사례를 소개하며 ▲공동 기술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는 미국 내 조선 생산 기반 확대와 기술 이전 방향을 중심으로 공급망 안정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을 설명했다.

이번 논의에 앞서 미국에서도 양국간 조선산업 협력 논의가 이뤄졌다.

국내 조선업계는 5월 11일부터 14일(현지시각)까지 미국 메릴랜드에서 열린 ‘2025 셀렉트USA 투자서밋’에 초청받았다. 이 행사에는 신종계 HD한국조선해양 기술자문,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 김진모 삼성중공업 미래사업개발실장 등이 참석했다. 미 상무부로 열리는 셀렉트USA 투자서밋은 미국 최대 투자 박람회다. 이번 행사에서는 조선업 투자 부문 라운드테이블이 별도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미간 조선업 협력 회담은 양국 고위급 인사들의 방한·방미 이후 구체적 협력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만남으로 풀이된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올해 2월 미국을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조선 등 양국 간 산업 협력 강화 방안을 협의한 바 있다. 4월에는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미국 장관급 인사 중 처음으로 방한해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둘러봤다.

양국간 조선업 협력은 조선업계의 미국 시장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조선업계는 이미 미국 시장 확대를 위한 행보에도 나섰다. 한화오션은 2024년 12월 미국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 한화오션은 현재 거제사업장의 스마트 생산 시스템을 미국 필리조선소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 다양한 수요와 장기적인 생산 역량 확보를 고려해 미국 내 추가적인 생산 거점 설립도 검토 중이다.

HD현대 역시 올해 4월 미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미국과 협력을 본격화했다. 양사는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각사가 보유한 함정 건조 분야 전문성과 역량을 결합해 선박 건조의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또 건조 비용과 납기를 개선하기 위한 노하우와 역량을 공유한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왼쪽)가 5월 16일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현장에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한화오션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왼쪽)가 5월 16일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현장에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 한화오션

미 당국의 조선업 재건을 위한 의지와 한국 조선업계의 미국 시장 확대 노력이 관세 협상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한·미 조선업 협력을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장성길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국 통상 대표단은 다음주 미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무역대표부 측과 제2차 기술협의를 진행한다. 통상 대표단은 미국의 25% 상호관세, 철강·자동차 등 25% 품목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 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한국은 관세 협상에서 호혜적 조치를 받기 위해 조선산업 협력을 강조할 수 있다.

산업부는 당장 관세 협상에 조선업 협력을 직접 연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군사 안보상 양국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간 협의 채널로 조선업 협력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이슈를 한 번에 처리하는 ‘원스톱 쇼핑’ 원칙을 내세울 경우 조선 협력 등 모든 방안이 거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5월 16일 한미 통상장관 회동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관세 면제를 요구하면서 조선업 등 미국의 전략 산업에서 최적의 파트너라는 점을 설명했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