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디지털 전환 바람은 은행과 증권을 가리지 않았다. 국내 증권사 지점 수가 잇따른 통폐합에 2년 새 100곳 이상 줄어 700곳 밑으로 떨어졌다. 특히 대형사 5개사의 감소 폭이 70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비대면 증권 거래가 활성화되고 증권사 수익구조가 자산관리(WM) 사업 등으로 다변화한 결과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고령층과 비수도권 소외현상을 초래할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증권사 60곳(외국계 포함)의 지점 수는 679개로 2023년 1분기 798개보다 100개 넘게 줄었다. 2019년 958개였던 증권사 지점은 매년 적게는 10여개에서 많게는 70개까지 사라지고 있다.
최근 2년새를 놓고 보면 미래에셋증권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미래에셋증권은 지점 수를 78개에서 61개로 17개 줄였다. 신한투자증권이 75개에서 59개, NH투자증권이 69개에서 53개로 각각 16개씩 문을 닫았다. 다음으론 iM증권(지점 수 12개) 13개, KB증권(63개) 12개, SK증권(15개) 10개, 한국투자증권(37개) 7개, 대신증권(36개) 7개 등의 순으로 지점을 줄였다.
증권사들이 지점 축소에 나선 건 2010년대 말부터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 비대면 금융 거래를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다. 한국은행이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 연령대(20·30·40·50·60대이상)의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경험 비율은 평균 81.3%로 2021년(65.4%) 대비 3년 만에 15%포인트 이상 올라갔다.
브로커리지(주식 중개) 비중이 컸던 사업구조가 다변화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WM 사업에서는 오프라인 대형 점포가 중요해 증권사들은 소규모 지점을 통폐합하는 동시에 고액 자산가 대상의 대형 지점을 늘리고 있다. 부유층들이 거주하는 강남구에 경제·금융 분야별 프라이빗뱅커(PB)를 배치하며 투자·승계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패밀리오피스가 대표적이다.
미래에셋증권은 19일 초고액 자산가 대상 ‘The Sage 패밀리오피스’ 점포를 강남구에 개설했고 메리츠증권도 지난달 말 고액 자산가 공략을 위해 여의도동·강남구에 ‘PIB강남센터’를 차렸다. 삼성증권도 작년 1월 ‘SNI 패밀리오피스센터’을 신설하며 큰 WM 영업수익을 내고 있다.
문제는 지점 축소 과정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층은 디지털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오프라인 점포 방문을 선호하고 이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100점 만점의 71.4점으로 취약계층(평균 82.9점)인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 농어민 중 가장 낮았다.
증권사에선 ▲주식 계좌 개설 ▲투자 상담 및 상품 안내 ▲WM·PB 서비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고령층이 이를 비대면으로 완전히 소화하긴 쉽지 않다. 모바일에서 펀드 상품에 가입할 경우 불완전판매 우려도 크다. 증권 서비스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셈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금융 양극화를 키울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주요 증권사 9곳의 전체 지점(379개) 중 비수도권 지점은 141개로 37.2%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4년 41.5%였던 점을 고려하면 지점 축소가 지방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권역별로 지점이 한 곳도 없는 증권사도 적지 않았다. 하나증권은 전남·제주·세종에, 삼성증권은 전남·세종에, 신한투자증권은 충남·세종에, KB증권은 전남에,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세종에 지점을 하나도 두지 않은 상태다. 지방 소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기업공개(IPO) 등 자금조달 애로사항으로 다가와 지역경제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비대면을 선호하는 고객들, 비용 축소를 원하는 증권사라는 상황이 겹치면서 지점 축소 트렌드 자체를 되돌리긴 힘들다”며 “다만 증권사에 있어 ESG 경영은 굉장히 중요한데 증권사의 사회적 역할, 사회의 지속 가능성 등을 감안해 비용을 보지 말고 지방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서비스를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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