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에 대해 조건부 허용 입장을 밝히면서,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 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기지 구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일본제철이 US스틸에 신규 설비 투자를 단행할 경우 시장 경쟁력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인수하지 못하고 파트너십 관계에 머물 경우, 계획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지 불확실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는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는 분위기다.

현대제철이 생산한 냉연강판. / 현대제철
현대제철이 생산한 냉연강판. / 현대제철

26일 로이터통신,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현지시각)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제철은 일부 소유권만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부분적인 소유권을 가지게 되고, US스틸은 미국이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5월 23일 SNS를 통해 일본제철의 인수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낸 데 이은 발언이다. 당시 그는 일본제철과 US스틸 간 파트너십으로 최소 7만명의 고용 창출과 14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은 이를 인수 승인 의사로 해석했다. 일본제철은 2023년 12월 US스틸 인수 계획을 발표했으나,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당시 후보였던 트럼프 모두 전미철강노동조합의 반대에 따라 매각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인수를 불허했다.

그러나 일본제철이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초 일본제철은 2024년 8월까지 US스틸 생산시설에 27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5월 19일 이를 약 140억달러(약 19조원)로 5배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4월 7일 인수 불허 결정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이후 나온 추가 제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일부 소유, 미국의 관리’라는 조건을 명확히 하면서, 일본제철의 완전 자회사화 가능성은 줄어들게 됐다. 일본제철 입장에서는 투자 전략과 협상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US스틸을 인수할 경우 일본제철은 2023년 기준 세계 4위 철강사에서 3위로 올라설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지분만 인수하는 데 그칠 경우 이 같은 전망에도 제동이 걸린다. 특히 추가 투자 계획이 완전한 인수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협상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일본제철이 추가 투자를 강행할 경우 미국 철강 시장의 지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일본제철은 미국 현지에 신규 제철소 설립을 포함한 투자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철강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내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일본제철의 대규모 투자가 시장 경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제철은 약 8조5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건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도 이 사업에 참여해 현지 생산 능력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에 따르면 미국의 철강 수요는 2030년까지 1억3000만톤 규모로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일본제철의 인수가 현실화되더라도 단기간 내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US스틸의 생산 체계가 당장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제철이 신규 제철소 건립 등 현지 투자를 본격화할 경우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제철의 미국 현지화는 주목할 만하지만 당장 현지 생산량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추가 투자가 현실화되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